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오랫동안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고 싶었습니다. 성령님을 구하며 수많은 사역들과 충성을 다했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하고 나약한 영적 현실 앞에서 절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쉬지 않고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막14:34)”라는 간구를 모든 길 위에 흩뿌리고 다녔습니다. 그 응답으로 성령께서 이스라엘로 인도하셔서 동지들과 함께 주님이 걸으신 그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한번 인도하신 지경은 끝까지 충성으로 밟기를 소망했습니다. 2008년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낯설고 생각하지 못한 지경에서 여러 시간을 동지들과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이 눈을 뜨고 여러 운동과 단체들을 결성했지만 우리는 오직 거기서도 ‘아버지의 기쁘신 뜻’만을 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선명하게 부어 주신 기름부음은 ‘말씀의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호 14:1,2
갈릴리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이 예언의 말씀이 불처럼 심령에 새겨졌습니다. ‘돌아온다’는 것의 히브리어는 ‘슈브’인데 그것은 ‘회개’와 ‘회복’을 의미합니다. 진정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버지의 얼굴과 보좌 앞에 돌아오려면 ‘회개’를 통한 ‘회복’에 이르러야만 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본질을 가르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지만 심령을 흔들리는 깨달음이 부어졌습니다. 그것은 곧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내 영적 허기와 절망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말씀의 부재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첫 메시지로 선포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는 것입니다. 역시 이 ‘회개’는 ‘슈브’, 곧 ‘테슈바’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헬라어로 말씀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의 연구는 예수님께서 일상어는 ‘아람어’로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히브리어’로 하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가르침을 히브리적인 언어의 배경에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진정으로 들어가는 회개 역시 ‘말씀의 회복’입니다. 나의 관점, 내 방식의 길에서 철저히 돌이켜 ‘아버지의 마음(뜻)’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사역이 열리기 전에 세례 요한이 앞서서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 역시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요한의 탄생을 알린 천사는 그의 사명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눅 1:17
이것이 회개의 사역입니다. 우리의 ‘거스려진 마음’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개인과 교회의 영적인 문제, 시대의 문제를 붙들고 많이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지 않는지 아픔 가운데 안타까워 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아버지의 마음’, 곧 하늘의 ‘진리’로 돌아 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말씀의 회복’,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진정한 회개요 치유와 부흥을 경험하는 하늘의 방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나라와 부흥에의 열망으로 무수한 열방을 다니며 충성했습니다. 영상과 책, 집회들을 통해서 많은 체험과 영향력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려면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처럼 행하고 성령의 권능을 행한다 해도 만일 ‘불법’을 행한다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마7:23)”고 주님은 엄격히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은 헬라어로 ‘아노미아’, 곧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벗어난 것’입니다. 이 후부터 내 안에 있는 불법의 영과 토대들을 발견하고 제거하게 해달라고 무수한 시간을 간구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아버지의 마음(하나님의 법,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눅1:17)입니다. 이 당연한 진리의 본질을 깨닫게 되자 제 삶에 놀라운 변화들이 열렸습니다.
이전에는 성경 자체보다 신앙서적을 읽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썼는데 그 후부터 말씀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음성이 심령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요8:31)”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최근 교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주제는 ‘신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갈망함이 열방의 교회에 부어진 것입니다. 나 역시 주 앞에 흠이 없고 정결한 신부가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부가 무엇인지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곧 ‘주님의 계명(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어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신부라면) 내 말을 지켜야 하리니(요14:23)”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역시 진정한 제자와 신부의 조건인 ‘내 말’은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 곧 ‘복음서의 가르침’입니다.
이전에는 그저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 손에 붙들려 쓰임 받기를 구했지만 그것에 이르려면 반드시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 그 말씀을 지키는 진정한 회개의 본질이 있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꿈꾸고 신부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이 ‘주의 말씀’에 대한 집중력이 너무나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와 그 유업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요소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가서 주님의 걸으신 길들을 밟으며 무수한 시간을 말씀을 열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전에 깨닫지 못하던 놀라운 말씀의 지경들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역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수많은 집회 요청들과 여러 만남들을 절제하며 오직 진리의 성령님께 말씀을 열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광야학교>를 열어서 매주 심도 깊게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탐구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진리의 지경들을 경작하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읽었던 말씀인데도 생소할 정도로 새로운 영적 개념들이 열리는 것에 놀랄 뿐이었습니다. 내가 이토록 주님의 말씀에 무지하구나 뼈아픈 자괴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말씀이 부어지자 이전에 알지 못하던 희열의 기름부음이 부어졌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광야학교>를 연 이유는 이 마지막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의 회복에 집중하면서 작은 부분 하나에 도 집중하는 체질로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주님은 명하셨습니다. 이 유언과 같은 말씀 안에 거하는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하여 무수한 시간들을 복음서와 율법, 선지서 등에 집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메시아닉 유대인(messinic jew)’형제들과의 교제에서 히브리적인 성경의 관점들에 눈을 떴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깨달은 말씀들도 소중하지만, 어쩔수 없이 서구의 신학적인 토대인 헬레니즘에 무게 중심을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히브리인들에게 히브리적인 언어와 문화와 역사적 기초에 부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정답은 아니나 성경을 더욱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무려 3년 이상을 메시아닉과 히브리적인 개념들로 무수한 자료와 교제와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진리의 성령님께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이 구절 역시 새롭게 심장에 새겨진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토록 구하고 인도함을 원했던 성령님에 대하여 새로운 기름부음과 지평을 열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진정한 스승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매우 집중하여 날마다 성령께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가르치다’라는 헬라어는 ‘디다스코’인데 ‘도제 교육’하듯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정말 성령님은 매우 체계적으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셨습니다. 신비주의가 아니라 매우 인격적이고 실제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누렸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동안 저와 <광야학교>의 동지들은 새로운 기름부음에 잠겼습니다. 대부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깊이 헌신한 분들이지만 말씀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고 모두가 감격하였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주님의 말씀이 정말 놀라운 은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치열하게 구했지만 영적으로 절망하고 나약함에 허덕이던 이들이 회복되고 새로운 기름부음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전에 알지 못하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깊이 만지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사랑하는 후배들(김도현, 김종철, 이지연, 김동훈)과 따로 모여 아침 기도모임과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 시간에 새로운 영적 지경을 깊이 누렸습니다. 우리끼리만 이 은혜를 누려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들이 모아졌습니다. 이 귀한 열매들을 주변의 동지들과도 나누자는 ‘한 마음’이 가득차서 결국 제가 함께 공부한 것을 근거로 더욱 보충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그동안 ‘제자’, ‘은혜와 진리’, ‘믿음, 소망, 사랑’, ‘교회’, ‘거룩’, ‘찬양과 감사’, ‘기도’ 등 많은 주제들로 공부들을 했는데 앞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책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성경에서 ‘진리’의 히브리어는 ‘에메트’입니다.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진실'을 가리키는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진정 아버지 앞에서 진실한 영은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선 자입니다. ‘진실 사전’은 바로 진리의 본질적 기초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에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말씀의 회복, 곧 진정한 회개에 자양분들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작은 순종과 결실을 통해서 진정으로 주님의 진리에 거하는 거룩한 ‘제자들’, ‘신부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진실사전>은 아래 사이트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