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어 해석 성경 탈굼 (6) 탈굼 온켈로스 번역의 특징

  • LV 12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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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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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굼 온켈로스는 탈굼 중에서 문자적 번역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지만 히브리어 원문과 다르게 번역된 곳이 일만 군데 이상이나 된다. 탈굼 온켈로스가 이렇게 많은 곳을 원문과 달리 번역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명확성 Clarity

탈굼 번역자가 원문을 변경한 곳의 대부분, 약 80%는 원문의 뜻을 더 명확히 하여 일반적인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랍비 슐로모 이츠하키(Rashi)는 탈굼 온켈로스가 토라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히브리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유대인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설명했다.

탈굼 번역가는 독자가 이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은유적 표현을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바꾸었다. 예를 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젖과 꿀을 생산하는 땅’으로 번역했다. 그는 또 일관성과 명확성을 위하여 히브리어 본문의 단수를 복수로, 과거 시제를 현재 시제로, 또는 이것을 역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는 토라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 경우 정관사 ‘헤이(ה)’를 지웠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나라나 화폐나 지역의 이름을 성경 이후 시대의 사람들이 아는 이름으로 바꿨다. 그리고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하여 단어를 추가했다. 그는 성경의 과장된 표현을 피하고 성경의 수동적인 표현보다 직접적이고 확실하며 선명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변화로 본문은 더 이해하기 쉽고 혼동의 여지를 줄였으며 모호성을 최소화하게 되었다.



대안적인 번역 Alternative translations

모든 언어는 여러 가지의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용된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히브리어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성경 주석자들도 일부 성경에 사용된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서로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탈굼 온켈로스는 성경 구절을 바꾸거나 더 정확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랍비들이 수용하고 있는 의미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초기 미드라쉬에 나온 의미들과 같으며 오직 미드라쉬가 본문에 대하여 평이하고 명백하며 단순한 의미를 사용하는 경우에만 그 의미를 가져와서 사용한다.

미드라쉬적 해석을 선호했던 랍비 슐로모 이츠하키(Rashi)는 성경에 나온 용어의 정의를 알기 위하여 수백 번이나 탈굼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많은 성경 주석가들이 같은 용도로 탈굼을 참고했다.



하나님에 대한 경의 Respect for God

탈굼에서 변경된 부분의 거의 20%에 해당하는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경의를 보이려는 목적으로 삽입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신체를 가진 존재처럼 행동하시는 것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면 ‘내가 손을 펴서’(출 9:15 등)라는 표현이 있다. 이런 표현은 사람들이 그런 구절에 익숙해져서 본문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백 곳에 사용된 이런 의인화된 묘사는 탈굼에서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 하나님의 ‘면전(presence)’ 대신에 ‘쉐키나’로 (출 17:7, 출 25:8 등)
-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남으로 (창 17:22, 출 3:6 등)
- 하나님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여 ‘하나님께’를 ‘하나님 앞에’로 (창 4:13, 창 17:18 등)
- 하나님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매개체로 하나님의 ‘멤라(말씀)’를 삽입 (창 3:8, 창 21:20 등)
- 하나님이 눈을 가지신 것처럼 표현된 ‘내가 보았다’를 ‘그것이 내 앞에 드러났다’로 (창 31:12, 출 3:7 등)



이스라엘의 조상들에 대한 경의 Respect for Israelite Ancestors

탈굼 온켈로스의 번역가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더 좋게 번역했다. 예를 들면 탈굼은 출애굽기 1장 8절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을 ‘새 왕이 요셉의 법령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바꾸었다. 이것은 새로운 바로가 이스라엘의 족장인 요셉이 이집트에서 행한 일과 업적을 알지 못한다면 그가 상당히 과소평가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바꾼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 대하여 더 좋게 바뀐 부분이 창세기만 해도 100군데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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