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새 노트(3)

  • LV 1 안정혜
  • 조회 3626
  • 2014.05.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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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어떤 글을 몇 자 적으려다가 결국 지우고 말았다.

모든 이들에게 노출되어지는 글에서는, 아무래도 마음 편하게 무언가를 나누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리트윗'과 '좋아요'와 댓글들...

혼자 모니터를 대하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눈들이 의식되어

진솔한 글 하나 남기기 조차 어려운 나에게,

<버드나무 아래>는 잔잔한 시냇물이 흐르는 인터넷 상의 고즈넉한 쉼터같다.

이곳이라면 마음껏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홈페이지 전면에 시원스레 드리운 버드나무 잎사귀들을 보니

하고싶은 말들, 내안에 감추인 칼 날들이 아닌 다른 말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사람의 홍수를 피해서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서 그 홍수의 잔찌꺼기들을 토해내고 싶진 않았다.

탁류가 아닌 하늘의 시냇물을 말하고 그리고 꿈꾸고 싶어졌다.

그것들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본질'을 다시금 붙들고 싶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날 밤. 남편과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리 속에 알 수없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여러가지 정죄의 말들이 메아리쳤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가는 것이 정말 옳으냐!"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기도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밖에는..

 

그 때 아버지께서 주신 마음을 아주 뜻밖에 것이었다.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이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지금 가장 원하시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 놀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소리에 응답하듯, 마음 속에 떠오른 말씀 하나가 강하게 내 영혼을 때리는 듯 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롬 8:19)

 

 

피조물이 모두가 한데 탄식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이 피조물을 왜 그동안 자연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우리 인간도 피조물인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 그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허무에 굴복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며 말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3)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18-22)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만물의 충만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인데,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다. 

진정한 교회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 쪽짜리의 모습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의 권능을 발하기 위해서는

저 유대인들이, 특별히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소망하는 정통 유대인들이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 둘이 함께 성령안에서 지어져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2)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5)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그 능력이라니!

그 부활의 능력을 교회가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저 유대인들이 돌아오도록 기도하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 이방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인 것이었다..!

 

할렐루야..! 

나중에 이스라엘 여정을 중 배운 전문용어(?) "믿음의 쓰리쿠션"이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지금에서야 정리가 된다. 

 

 

마귀는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항상 그 상황에 매이게 만든다.

눈 앞에 당장 아이들이 죽어가니 그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하는 기도만 하게 되고

다른 기도들은 쓸모없어 보이거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자의 외침이라고 느껴지게 된다.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처절하고 절망스러우니..그렇게 부르짖는 기도에 긍휼하신 아버지는 당연히 응답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도는 금방 지쳐버리게 되더라..분노와 절망만이 마음에 감돌다가 결국 지쳐 차게 식어버리게 되더라. 내가 그랬었다.

 

지치는 기도를 하고 싶지 않다. 한나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메시아이신 주님이 오시길 구하는 기도를 하고 싶다.

다시 오실 예수님. 그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능력있는 교회가 든든히 서가길 바라며,

저 유대인들이 돌아오길. 또 우리 교회가 주님의 긍휼로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오직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그 긍휼에 의지하여,

성령안에서 함께 든든히 서가는 모습. 예수님의 몸이 서가는 그 모습을 바라며

 

이미 하늘에서 다 이루어진 새 예루살렘이 이 땅에 도래하길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주여 오시옵소서 부르짖는 그 기도를 하고 싶다.

 

그럴 때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에

주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겨 주셔서 우리의 아이들을 반드시 다시 살려내주실 것이라 믿는다.

 

 

한국에 돌아와 현실 속에 묶이니 다시 마음이 어두워지고 절망에 빠져들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고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 버드나무 아래에 오길 잘했다..

저 유대인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온 이 이스라엘의 여정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다시금 돌이키며, 이렇게 글을 쓰고 정리하니 다시 마음에 힘이 솟는다. 

 

 

우리 버드나무 아래에서 시온을 노래하자.

울며 씨를 뿌리며 그 시온(형제의 연합)을 노래 할 때,

기쁨으로 반드시 그 단을 거둘 것이다.

우리 그 형제들과 함께 반드시 성전으로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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