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스라엘을 촬영 갔을 때,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었다.
남들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감람산, 누군가는 사해 근처 '엔게디'를 그렇게
가고 싶었다 한다.
엘리야를 좋아하는 이는 '갈멜산', 재일교포 출신 어떤 선교사 자매는
비아돌로로사에 진입하자 마자울기 시작하여 성묘교회(갈보리로 알려진 장소)에서
나올 때까지 우는 것을 봤다.
"예수님 십자가 지시고 가신 길에 접어 들자 저절로 울음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런 자매에게 그곳이 진정으로 십자가 지고 가신 길이 아니라 감람산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나의 심중에 품은 장소는 '에레모스'였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갈릴리의 장소를 '한적한 곳'이라고 했다.
헬라어로는 '에레모스 토포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흠정역(KJV)에는
'solitary place', '나 혼자만의 공간'이라 번역하였다.
사실 '에레모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미드바르'로서 '광야'이다.
헬라어 사전은 '고독한', '버려진', '황량한', '외로운 ', '광야' 등등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그곳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장소이고 세례 요한이 말씀을 받고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빈들'(눅3:2-3)이다.
그런데 복음서는 한결 같이 예수님께서 그 놀라운 사역과 말씀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피해 에레모스에서 홀로 기도하셨다고 한다.
도대체 그 풍경, 그 시공간은 어떤 것일까 상상력과 감수성 풍부한 나는 너무나 그곳이
그립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적 부터 루오의 <황혼의 그리스도>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홀로, 외로이 외진 곳에
계신 그리스도의 풍경을 상상하곤 했다.
'에레모스'는 바로 그런 그리움의 장소였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 답게 나는 그 장소를 찾으려고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검토했다.
그러나 마음 드는 뾰죽한 수나 소스는 나오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감격스러운 갈릴리에서도 나는 계속 에레모스를 보고 싶어 했다.
심지어 "에레모스...주님이 홀로 기도하신 그 장소에 가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성령님께
인도하심을 속으로 구하기 까지 했다.
나는 가끔 영상 작업의 비결을 묻는 후배들에게 "성령님을 감독으로 모셔라"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농담이라 여겨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다.
나는 거의 모든 작업에서 성령님을 의지했고 도움과 감각과 연출까지 의탁했던 것이다.
방송에서 작업 할 때도 그랬다.
체계적인 훈련이나 공부가 거의 없었던 내가 누구보다 방송에서 좋은 결실과
평가들을 얻은 것은 거의 모든 작업들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탐구, 추구, 열정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님을 의지할 때의 소스나 결과, 영향력은 사뭇 달랐다.
"감독님...아침에 매점에서 산 이스라엘 지도에...찾으시는 에레모스라는
지명이 나와 있는데요."
갈릴리 건너편 옛 거리사 지역의 숙소에서 가이드하던 후배 J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감격하여 그것을 보았다.
정말 지도에는 가버나움 뒷편 산자락에 '에레모스'라는 지명이 표기 되어 있던 것이다.
나는 내밀하게 성령님께서 나의 애타는 갈망을 들어 주셨다고 감격했다.
우리는 서둘러서, 들뜬 마음으로 그곳을 찾아 차를 달렸다.
같이 작업하던 후배들도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것인양 들떠 설레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에레모스'에 가게 된 것이다.
주님의 주된 사역지 였던 가버나움 회당터 뒷편에 야트막한 구릉지대처럼 보이는
산자락이 있다.
그 산의 지명이 에레모스였다.
마가나 누가는 가버나움에서 치유와 축사를 마치신 주님께서 사람들을 피해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버나움 근처일 것이다.
우리가 오른 그곳에서 눈 아래 고대 가버나움 유적지가 내려다 보였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 근처가 주님이 기도하신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감격하여 촬영을 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갈릴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름 다운 장소이고 아늑하고 편안한
구릉지의 갈대 숲이 아버지의 품에 안긴 듯 아득한 기분을 자아냈다.
나는 홀로 예수님은 '에레모스 오타쿠'셨을 것이라는 장난스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 그렇게 자주, 그곳에 홀로 찾아 가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장난스런 생각이 아니었다.
정말 주님은 '광야 오타쿠'셨다.
그것은 신약 시대 복음서 만의 장소, 산물이 아니었다.
성경 전체에서 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영적이며 언약적인 시공간 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후에 십여차례 더 에레모스를, 수많은, 다양한 이들과 찾아가서 기도하고
묵상하였다.
그러면서 '에레모스 토포스'의 비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도 점점 '에레모스 오타쿠'가 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