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마 22:23-28
이 말씀은 신약성경 가운데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신학을 가졌고,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신학적인 논쟁이 서로 적지 않았던 것을 성경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행 23:6-8
모세오경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옳지 않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예수님께 올무를 놓기 위해 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만약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관점에서의 부활이 실제로 있다면,
모세가 말한 계대혼인에 관한 규례와 모순되기 때문에 모세오경이 틀리지 않다면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모두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대해서 온전한 관점을 갖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부활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시면서
이것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 22:32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에 있어서
아주 적절한 답변이었음을 알 수 있다(막12:34).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시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막 12:28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두개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오해’라는 단어는 ‘플라나오'라는 헬라어인데
‘길을 벗어나다’, ‘미혹되다’, ‘방황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이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대한 관점이 미혹되었고 진리에서 벗어나
비진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 22:32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사두개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 놀라운 것이냐면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 무엇인지.. ‘살아있는 자’, '죽은 자'가 무엇인지
그 본질과 핵심을 성경에서 정확하게 가져와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을 말씀하시면서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언약'을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창15:17)
그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그 후손에게 가르쳐 지키고 행하게 한 자들이었다.
성경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있는 자들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스마엘’과 ‘에서’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약속의 자손이 아니었다.
이들의 유형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를 가리킨다.
사람이 보기에 살아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살아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산 자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 그 ‘약속의 씨’를 가진 자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롬 9:7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표면적이고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이삭(예수 그리스도)으로부터 난 자
그 씨(그리스도의 말씀)를 가진 자만이 열매맺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마 21:43).
이것을 이해해야 표면적인 부활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온전한 이해를 갖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들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약속의 씨’, 진정으로 살아계신 자로서
첫째 아담의 죽음에서부터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부활(다시살게)하게 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부활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육적인, 표면적인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이전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5
부활은 우리 육신의 몸이 다시사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죽음’ 가운데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진리를 듣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부활은
이런 부활보다는 먼 미래, 사후세계,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의 몸이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다투던 부활의 관점과 동일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논하면서
이런 관점을 가진 이들에 대하여 말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고전 15:35
이러한 질문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진정한 부활의 본질에 대해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부활, 몸, 육신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두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바울은 그가 뿌리는 씨, 그가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으로 말씀을 오해하게 된
그 씨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예수님과 바울의 가르침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이 부활이 있어야 진정한 하늘에 속한 몸이 되는 것을 강조하며
다른 부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문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집중해서 다루는데
바울은 이 부활에 차례가 있다고 말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 15:22-26
먼저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다음은 성령님을 통해서 초대교회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셔서
온전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의 부활이다.
셋째는 마지막 부활은 그가 모든 통치자와 모든 권세를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의 부활이다.
이 때는 사망을 온전히 멸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하는 이런 부활의 관점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이 말씀을 나누면서도 부활의 몸이 어떠한 모습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담(옛 사람,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 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고
사망을 온전히 멸하는 진정한 부활이 차례대로 일어날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부활 때’, 곧 ‘죽은 자가 살아나는 때’에는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대부분은 미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부활의 몸을 입을 때에
천국에서는 결혼하는 일이 없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은 구약의 본질을 정확하게 가져오셔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노아의 때에 대해서는 창세기 6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 6:2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름다움으로 보아야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아내를 삼아야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아름다워보이고 좋아보이는 것으로
자기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으로 행한 것이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는 것과도 같고 죄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예수님은 시집가고 장가간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나안의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방화되었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셨다.
이것을 성경은 ‘죽음’이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3
본래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육신이 되자 하나님의 영이 떠나신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3-14
하나님의 영이 떠나 육신이 된 상태, 생기가 없는 상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것을 먹는 날엔 반드시 죽게 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생명나무)이 아닌 다른 것으로 먹었기 때문에 육신이 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죽음’, ‘사망’이다.
창세기 6장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 생기가 없는 상태를 ‘육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육신이 된 상태가 죽은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는 자가 ‘살아있는 자’, 곧 ‘생명’을 가진 자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1:10
이 ‘영’은 그리스도의 영, 곧 ‘예수님의 말씀(가르침)’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다.
'육신'은 썩기 때문에 ‘썩을 것’이라고도 하고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썩지 아니할 것은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육신', ‘썩을 것’은 대부분 ‘사람의 계명’, ‘장로들의 유전’을 의미한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가 좋아보이는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곧 ‘사람의 계명’, ‘장로들의 유전’이다.
자기들이 보기에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것.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가감되었거나
왜곡되어진 상태, 비진리의 상태가 바로 ‘죽음’이다.
바울은 선악과가 곧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골 2:20-23
다시 정리하면 죽음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 육신, 썩을 것이 된 상태,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에서 벗어난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들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고
생명, 살아있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진리)이 우리 안에 거하여
썩지 아니할 것을 따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고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누가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눅 20:34
이 세상의 자녀들, 육신에 속한 자녀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아 시집가고 장가간다.
하지만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함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
이 세상과는 다른 저 세상(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난 자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 육신으로 행하지 않고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부활은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여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인데
사두개인들은 계대혼인에 관한 규례가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씨,
그 분의 말씀이 그 분의 아내된 교회에게 있게 하여 하나님 나라에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활이며 계대혼인에 관한 규례의 본질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마 22:23-24
여기서 말하는 상속자도 그냥 상속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를 의미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성경에서 상속자는 아들을 가리킨다.
아들은 어렸을 때는 종과 같다. 따라서 유업을 받을 약속이 있지만
장성한 자가 되어야 진정으로 유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유업을 이을 자녀를 ‘아들’, 곧 ‘상속자’라고 말한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어 그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어 상속자로 삼게 하셨다.
그는 바로 이삭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삭의 유업을 이어받은 상속자가 바로 야곱, 즉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결혼한 신부, 교회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상속자,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계속)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마 22:23-28
이 말씀은 신약성경 가운데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신학을 가졌고,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신학적인 논쟁이 서로 적지 않았던 것을 성경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행 23:6-8
모세오경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옳지 않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예수님께 올무를 놓기 위해 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만약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관점에서의 부활이 실제로 있다면,
모세가 말한 계대혼인에 관한 규례와 모순되기 때문에 모세오경이 틀리지 않다면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모두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대해서 온전한 관점을 갖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부활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시면서
이것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 22:32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에 있어서
아주 적절한 답변이었음을 알 수 있다(막12:34).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시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막 12:28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두개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오해’라는 단어는 ‘플라나오'라는 헬라어인데
‘길을 벗어나다’, ‘미혹되다’, ‘방황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이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대한 관점이 미혹되었고 진리에서 벗어나
비진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 22:32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사두개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 놀라운 것이냐면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 무엇인지.. ‘살아있는 자’, '죽은 자'가 무엇인지
그 본질과 핵심을 성경에서 정확하게 가져와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을 말씀하시면서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언약'을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창15:17)
그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그 후손에게 가르쳐 지키고 행하게 한 자들이었다.
성경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있는 자들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스마엘’과 ‘에서’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약속의 자손이 아니었다.
이들의 유형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를 가리킨다.
사람이 보기에 살아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살아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산 자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 그 ‘약속의 씨’를 가진 자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롬 9:7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표면적이고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이삭(예수 그리스도)으로부터 난 자
그 씨(그리스도의 말씀)를 가진 자만이 열매맺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마 21:43).
이것을 이해해야 표면적인 부활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온전한 이해를 갖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들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약속의 씨’, 진정으로 살아계신 자로서
첫째 아담의 죽음에서부터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부활(다시살게)하게 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부활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육적인, 표면적인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이전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5
부활은 우리 육신의 몸이 다시사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죽음’ 가운데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진리를 듣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부활은
이런 부활보다는 먼 미래, 사후세계,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의 몸이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다투던 부활의 관점과 동일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논하면서
이런 관점을 가진 이들에 대하여 말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고전 15:35
이러한 질문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진정한 부활의 본질에 대해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부활, 몸, 육신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두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바울은 그가 뿌리는 씨, 그가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으로 말씀을 오해하게 된
그 씨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예수님과 바울의 가르침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이 부활이 있어야 진정한 하늘에 속한 몸이 되는 것을 강조하며
다른 부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문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집중해서 다루는데
바울은 이 부활에 차례가 있다고 말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 15:22-26
먼저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다음은 성령님을 통해서 초대교회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셔서
온전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의 부활이다.
셋째는 마지막 부활은 그가 모든 통치자와 모든 권세를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의 부활이다.
이 때는 사망을 온전히 멸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하는 이런 부활의 관점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이 말씀을 나누면서도 부활의 몸이 어떠한 모습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담(옛 사람,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 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고
사망을 온전히 멸하는 진정한 부활이 차례대로 일어날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부활 때’, 곧 ‘죽은 자가 살아나는 때’에는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대부분은 미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부활의 몸을 입을 때에
천국에서는 결혼하는 일이 없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은 구약의 본질을 정확하게 가져오셔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노아의 때에 대해서는 창세기 6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 6:2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름다움으로 보아야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아내를 삼아야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아름다워보이고 좋아보이는 것으로
자기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으로 행한 것이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는 것과도 같고 죄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예수님은 시집가고 장가간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나안의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방화되었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셨다.
이것을 성경은 ‘죽음’이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3
본래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육신이 되자 하나님의 영이 떠나신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3-14
하나님의 영이 떠나 육신이 된 상태, 생기가 없는 상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것을 먹는 날엔 반드시 죽게 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생명나무)이 아닌 다른 것으로 먹었기 때문에 육신이 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죽음’, ‘사망’이다.
창세기 6장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 생기가 없는 상태를 ‘육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육신이 된 상태가 죽은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는 자가 ‘살아있는 자’, 곧 ‘생명’을 가진 자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1:10
이 ‘영’은 그리스도의 영, 곧 ‘예수님의 말씀(가르침)’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다.
'육신'은 썩기 때문에 ‘썩을 것’이라고도 하고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썩지 아니할 것은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육신', ‘썩을 것’은 대부분 ‘사람의 계명’, ‘장로들의 유전’을 의미한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가 좋아보이는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곧 ‘사람의 계명’, ‘장로들의 유전’이다.
자기들이 보기에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것.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가감되었거나
왜곡되어진 상태, 비진리의 상태가 바로 ‘죽음’이다.
바울은 선악과가 곧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골 2:20-23
다시 정리하면 죽음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 육신, 썩을 것이 된 상태,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에서 벗어난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들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고
생명, 살아있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진리)이 우리 안에 거하여
썩지 아니할 것을 따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고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누가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눅 20:34
이 세상의 자녀들, 육신에 속한 자녀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아 시집가고 장가간다.
하지만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함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
이 세상과는 다른 저 세상(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난 자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 육신으로 행하지 않고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부활은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여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인데
사두개인들은 계대혼인에 관한 규례가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씨,
그 분의 말씀이 그 분의 아내된 교회에게 있게 하여 하나님 나라에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활이며 계대혼인에 관한 규례의 본질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마 22:23-24
여기서 말하는 상속자도 그냥 상속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를 의미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성경에서 상속자는 아들을 가리킨다.
아들은 어렸을 때는 종과 같다. 따라서 유업을 받을 약속이 있지만
장성한 자가 되어야 진정으로 유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유업을 이을 자녀를 ‘아들’, 곧 ‘상속자’라고 말한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어 그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어 상속자로 삼게 하셨다.
그는 바로 이삭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삭의 유업을 이어받은 상속자가 바로 야곱, 즉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결혼한 신부, 교회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상속자,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