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에피그노시스-4

  • 김우현
  • 조회 4270
  • 2014.03.29 12:43

레위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략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레12:1-5

 

이것은 무슨 영적인 의미를 가진 규례일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의미인지 문자적으로도 쉽게 만져지지 않는 말씀이다.
아마도 이것을 깊이 고민해본 이들은 몇 몇 신학자들 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율법의 규례들은 낯설기만하다.
물론 유대의 학자들, 랍비들은 나름대로의 이해로 연구하고 해석했을 것이다.
정통 유대인들은 이 명령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순종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들은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6)고 강조한다.
진정한 메시아의 제자들은 이 율법의 문자, 겉으로 들어난 ‘수건’같은 조항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 안의 ‘영’을 만져야 한다.
아버지가 의도하시는 ‘영적인 본질’이 이 문자적인 규례 안에 계시된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는 한동안 레위기를 읽으며 그런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전에는 성경에서 가장 읽혀지지 않는 것이 레위기였다.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집중하여 진리의 성령님께 구하며 이 교훈 안에 감추인 ‘아버지의 뜻’을
열어 달라고 구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영적인 실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나면 레위기를 비롯한 율법이 얼마나 놀랍고
흥분하게 하는 진리의 비밀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던 율법 조항들이 이제부터 아주 깊은 연관이
있게 될 것이다.
이 레위 제사장들에게(코하밈) 주신 희생제사 규례는 전부 예수님에 대한 계시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율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지키려고 애쓴 이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탐구하던 율법(토라)는 곧 ‘메시아 예슈아(예수님)’에 대한 증거이다.
이것은 율법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원리이다.
이 관점을 가지게 되면 일단 율법이 달리 보인다.
‘아! 율법의 그 난해하게 느껴지는 규례들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구나?
그것을 영적으로 감추신 비유와 예언들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 보인다.
나는 이것을 바울에게서 배웠다.
바울 서신을 면밀히 탐구하면서 그가 깨달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놀라운 비밀들이
성막과 제사장들의 규례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된 것이다.
예수님과 바울, 제자들의 시대에는 아직 신약 성경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구약 성경, 특히 율법과 선지서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증거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행28:23 

 

제자들은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읽어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율법의 조항들이 예수님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 신학자들도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구약에서 ‘정결해지는 것’에 대한 규례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물로 씻어서’ 정결하게 되고(흐르는 물에 씻어서), 또 하나는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룩함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이다.
특히 레위기에는 이 두 가지 정결하게 하는 규례가 자주 나온다.
이런 기본적인 성경의 원칙들을 잘 익히고 마음에 새겨야 아버지의 뜻을 파악하게 된다.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레 14:6-8) 

 

이것은 ‘나병환자’가 정결하게(거룩하게)되는 규례이다.
‘나병환자’는 피부가 하얗게 피어나는 종기, 피부병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있으면
이스라엘의 진영(camp) 안에 거하지 못한다.
그리고 ‘장막 밖’에서 추방되어 7일간이나 있다가 들어오게 된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 나병환자가 정결하게 되는데 ‘비둘기’를 잡게 하시고
‘백향목’, ‘우슬초’, ‘홍색실’과 함께 ‘흐르는 물’에 잡고 ‘일곱 번’을 뿌리라는
이상한 계명을 주신 것일까?
그리고 또 왜 ‘7일’인가?
그런 형식 자체가 어떤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것일까?
이것은 ‘영적인 비유’이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9,10

이 장막에서 행하는 제사들, 정결하게 하는 예식들은 ‘비유’이다.
그것은 ‘육체의 예법’일 뿐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그렇게 외적이고 비유적인 규례로
가르치신 것이다.
‘개혁’이라는 히브리어는 여기에만 쓰이는 것인데 ‘메시아적 회복’이라는 의미다.
율법의 형식은 아버지의 뜻, 공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로 씻고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성취하셨다(요19:34).
율법에서 ‘나병’은 ‘아담의 원죄’에 대한 비유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죽음 가운데 처한 인류의
영적인 현실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병에 걸린 자들은 진 밖으로 추방되는 것이다.
‘7일간의 추방’은 베드로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7)고 증거한 것처럼 아담의 타락 이후 ‘7천년’의
시간에 대한 계시이다.
진정한 구속과 회복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인 7일째에 이루어진다.
율법을 자세히 공부하면 이미 ‘초림’의 구속과 ‘재림’의 ‘구원의 완성’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아버지가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 의의 기초이다.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런 육체의 율례를 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부정하고 더럽고 악한 원죄들(모든 죄들)을 씻어주시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규례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이 규례 안에 있는 의미들을,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신 구속의 능력과 영광과 역사가 깊은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아들을 희생제물, 화목제물로 삼으시는 아버지의 뜨겁고 위대한 사랑의 뜻을 더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훈들을 지루하고 모른다고 포기해버리니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유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식의 높이와 너비, 깊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골1:25).
이제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레위기의 말씀을 다시 읽으면 아주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이성호 (121.♡.68.27)
선악과 사건을 은혜와 진리의  눈으로 읽어 내시면 아마도 더 큰 것을 받게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나토스라는 관점에서 선악과를 보셔보세요. 죽어야만 살리실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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