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아버지의 뜨거운 마음, 갈릴리(2)

  • 김우현
  • 조회 3657
  • 2014.02.05 14:31

   

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18-20

 

 

마태에 의하면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사역이다.
앞에서도 나누었지만 히브리적인 문장의 구조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처음에 기록하는 것이다.
레위 마태 역시 예수님의 여정의 가장 중요하고 압축된 메시지를 시작 부에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 자신의 제자로 헌신하는 것에 적용할 뿐 여기에 담긴
언약적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연구하다가 다시 의문에 빠졌다.
왜 갈릴리의 많은 중욯란 지역들이 있는데 ‘벳새다’에서 거기 사는 ‘어부들’을
제자로 먼저 부르시는 것일까?
물론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길을 가다가 어부들을 만났고 하나님의 지시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서 그친다.
나도 이전에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은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다시 상기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골2:3)가
깊이 감추어져 있다.
이 감추인 보활를 캐는 것이 ‘왕의 본질’이다.
나는 ‘벳새다’와 ‘어부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깊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요한은 정확하게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요1:44)고
기록했다.
그리고 예수님계서 이 어부들을 처음 제자로 부르신 곳이 ‘벳새다 해변’이다. 
그러나 지금 벳새다의 해변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곳은 갈릴리 호수의 물이 계속 줄어들어서 드넓은 황무지가 되어 있다.
하지만 자료에 나오는 고대의 벳새다는 마을 입구까지 물이 들어 왔고
그 물가에서 제자들이 그물을 깁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의 표면적인 기록만으로는 벳새다의 중요성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곳을 찾아 가서 살피기로 했다.
지금은 그냥 황무지처럼 버려진 나무 숲길을 깊이 들어가 살피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드높은 갈대와 나무 숲 사이에 작은 물길이 드러났다.
나와 동행한 후배들은 탄성을 질렀다.
“이 물줄기가 저 언덕 위에 있는 벳새다까지 이어지는것 같은데요”
가이드를 하던 후배 진상이가 흥분하여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고대의 자료가 맞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엔 벳새다까지 물이 들어 왔던 건데...
지금은 작은 흔적만 남은 것이다“
나 역시 이 발견에 마음이 들떠서 그렇게 말했다.
현재 발굴된 벳새다는 예수님 당시의 기록과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넓은 광야 위에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물줄기를 따라서 고대의 유적지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고대의 벳새다는 내가 상상한 것 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작지만 국립공원으로 되어 있는 입구의 표지인 벳새다가 다윗 시대에 있었던
 ‘그술 왕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작은 갈릴리의 어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이 ‘이방의 왕국’이 자리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표지판에는 이곳에서 다윗이 그술 왕의 딸 ‘마아가’와 결혼했다고
되어 있었다.
갑자기 나의 눈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서 낳은 아들이
‘압살롬’(삼하3:3)이라는 것이다.
정말 이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벳새다는 단순한 어촌이 아니었다.
고대에 이곳은 이스라엘과 이방의 경계였다.
벳새다를 지나 갈릴리 북부로 올라가면 지금의 ‘골란 고원’이다.
드넓은 평지가 헬몬산 입구까지 펼쳐지는데 그로 인해 예부터 많은
소들을 키웠다.
그것이 바로 ‘바산의 암소’로 유명한 것이다.
헬몬산을 넘으면 다메섹이 나온다.
이 다메섹이 바로 디글랏블레셀이 지배했던 ‘앗수르’와 ‘아람’의 본거지이다.
후에 바울이 바로 이 길을 지나서 다메섹의 제자들을 잡으러 간것이다.
그런 모든 여정들은 정확히 하나님의 언약들, 예언들을 성취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시작에 이 벳새다를 찾으신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은 이방과의 경계이며,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로
끌려간 장소이다.
그리고 다윗이 ‘이방의 신부’를 얻은 곳이다.
나는 이것에서 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사역에
가장 먼저 이 마을에 사는 어부들을 부르셨는지 깨달았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님의 길은 치밀하고 오묘하다.
다윗이 이방 여인을 신부로 취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방의 교회를 세우시는
예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방에 끌려가 ‘잃어버린 양’이 되었던 경계가 이곳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을 생각하시며 그들이 사로잡혀간 그 지점을
결코 잊지 않으신 것이다.
그것이 메시아의 갈릴리 사역의 의미이며 벳새다를 가장 먼저 가신 이유다.
나는 예루살렘이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갈릴리에서 다윗의 흔적 발견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현장을 찾아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 말씀의 역사는 결코 추상적인 의미 속에서만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한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역사와 상황에서 쓰여 졌기에 그 땅을
발로 밟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곳 출신의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4:19)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그리스도로서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는 것이다.
주님의 길은 ‘사람을 낚는 것’이다.
나는 왜 예수님께서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웅장하고 화려한
예루살렘의 종교적 지도자들을 먼저 부르시지 않았을까 고민했었다.
당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의 열심은 대단했었다.
사도 바울 역시 바리새인이었다.
주께서 그를 세우셨을 때 얼마나 깊고 놀라운 복음의 비밀과 역사들이
열렸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갈릴리에서, 그것도 주로 ‘벳새다’의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신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매력적이고 멋진 발상을 따라 순종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마4:4)이다.
예수님의 여정은 철저히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찾아 가신 지명 하나, 만나는 사람 하나, 행하신 일들,
그 모든 동선(動線)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는 예레미야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 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렘16:15,16
 

정확히 예수님은 이 예언을 따라서 어부들을 부르신 것이다.
이방 땅들에 흩어져 사는 잃어버린 양들을 다시 이스라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을 보라!
‘어부들’을 통해서 그들을 낚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 이 말씀의 성취이다.
벳새다는 ‘북방 땅(앗수르)’으로 가는 길목이며 이방의 경계였던 것이다.
그곳을 통해서 짐승들이 지배하는 흑암의 땅으로 쫓겨 간 것이다.
바로 정확히 그 지경에 사는 어부들을 예비하시고 부르신 것이다.
아모스 역시 ‘때(메시아의 날)가 이르면 ‘바산의 암소들’의 압제에서 시달린
양떼들을 “낚시로 너희 남은 자들을 낚겠다”(암4:2)고 하셨다.
‘바산’은 갈릴리 북부 앗수르로 가는 지경이다.
이들이 바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이방 갈릴리의 백성들’이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화려하고 형식적인 예배와 전통에 빠져 무감각했던 유대의 목자들이
전혀 감조차 잡지 못했던 이 잃어버린 양들을 찾고 찾으시는 아버지의 치밀한
‘열심’이 예수님의 여정에 계시되어 있다.
나는 요한이 왜 ‘갈릴리 벳새다 사람 안드레와 빌립’을 통해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냥 열심만으로 자료를 수집해서 복음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비록 대부분 예루살렘에서 무시하는 ‘갈릴리 사람들’이었지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이후에 그들은 ‘모든 진리’가운데 인도함을 받은 것이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22,23

 

 

이전에는 주목하지도 않았고 깊이 이해되지 않던 이런 사건들, 말씀들이
‘갈릴리’를 탐구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들의 부르심, 곧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을 성취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온 ‘헬라인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뵙기를 청하였다.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데 당시 ‘헬라인’이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 지역’의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빌립과 안드레’를 통해서 ‘헬라인’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셨다.
도대체 헬라인 몇 명이 찾아온 이 일이 어떤 의미이기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나는 이 ‘헬라인들’은 누구인가를 살펴보았다.
학자들은 그들이 고대 헬라의 제국에 흩어져 사는 자들을 상징하며 성경이
예언한 ‘흩어진 양떼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요7:35

 

 

초막절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에게 “이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내신 이에게 간다”(요7:33)고 하셨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그들이 말한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 곧 ‘헬라인’이라고 했다.
고대 헬라의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거기서 북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의 흔적을
무수히 발견하였다고 한다.
헬라와 로마의 지배를 받기 수백 년 전에 끌려간 백성들은 이미 그 땅들에
흩어져 살았던 것이다.
심지어 갈릴리 가장 북부인 ‘라이스’를 정복하고 살던 ‘단지파’는 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들의 흔적들이 지중해의 섬들과 고대 헬라의 ‘마케도니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심지어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에브라임’의 근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의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연구한 바 있다.
그런데 권위 있는 학자들의 연구로 흩어진 ‘에브라임’이 그 땅에 흘러 들어가
초기 역사에 합류했다는 근거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을 통칭해서 ‘헬라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들은 그냥 이방인이 아닌 앗수르에 끌려가 흩어진 자들이고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올라와 경배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왔을 때 ‘영광’을 얻으신다고 하신 것은 바로 그런
‘잃어버린 양’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이 찾아온 그 일이 작은 것이 아니라 예언적인 언약의 성취로 이해하신
것이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10:15,16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다윗처럼 ‘사나운 짐승들’에 먹힌 양들, 곧 이방에 사로잡힌 ‘
흩어진이스라엘’을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 든 양들만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다른 양들’도
인도하고 구원하실 것이라 하셨다.
이 우리 밖의 ‘다른 양들’이 바로 ‘헬라인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이방인들’이 아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이다.
그들은 먼저 유다의 집(우리 안에 있는 백성)이 아닌 이방에 흩어진(우리 밖에
있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곧 ‘물고기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창세기의 ‘에브라임의 언약’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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