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갈릴리(5)

  • 김우현
  • 조회 1693
  • 2014.02.06 06:13

5.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1-3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마태의 이 기록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당시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자손‘이 와서 통치하는 ‘메시아의 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정치적으로 다스리는
‘군왕’을 고대했다.
그러나 진정한 메시아요 왕으로 오신 주님의 길과 관점은 그들과 달랐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를 물었을 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고 하셨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분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안에 어떻게 그 나라가 임하는가?
그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 ‘산상설교’요 ‘천국 비유’이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 나라, 아버지의 영광의 임재를 갈망하는 이들은
이 ‘천국 복음’을 깊이 사모하고 깨달아야만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


‘천국(하나님 나라)’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산상설교의 이 말씀은 천국복음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를 그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천국의 열쇠’가 바로 ‘아버지의 뜻’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주님의 첫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는 다는
것이다.(마5:3)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심령의 가난함’을 획득하기 위하여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과 능력에 깊은 갈망과 실제를 가지는 일이 드물다.
왜 그런 것인가?
이 말씀을 ‘천국 복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령’의 헬라어는 ‘프뉴마’이다.
이것은 ‘영(spirit)'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신약에서 거의 ’성령‘에 사용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성령이 가난해진다는 의미를 상상하지 못한다.
헬라어 성경에는 ‘토 프뉴마티’이다.
‘영으로 가난해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가난해짐’을 의미한다.
‘가난한자’는 ‘프토코스’인데 이것은  ‘극한 가난에 처하다’라는 것이다.
아무런 소유가 없는 거지와 같은 자를 말할 때 사용하던 단어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자기가 완전히 부서지고 죽은, 자기의 것이
전혀 없는 자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겨자씨의 비유’와 동일한 것이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13:31

 

우리는 이것을 매우 작은 것을 심었지만 나중에 큰 나무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이해해왔다.
시작은 미미하나 나중은 창대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천국’은 ‘겨자씨’ 한 알을 밭에 심은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과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도 갈릴리 호수 주변의 들이나 산에는 겨자풀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은 밭에 심는 채소가 아니다.
그냥 지천에 자라는 ‘들풀’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 밭’에 심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이에 앞선 ‘씨 뿌리는 비유’(마13:3-8)에서 주께서 말씀하신 ‘밭’이 ‘세상’이라는
것(마13:38)것을 알고 있다.
‘겨자씨’는 헬라어로는 ‘미크로스’, 곧 당시에 ‘가장 작은 것’을 나타내는 속담이다.
이 말씀은 세상의 자기 밭, 곧 스스로 ‘가장 작아진 사람’이 가장 큰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한 말씀이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가장 ’작은 자(미크로스)‘(마18:6)을 가리킨다.
이것이 곧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그것은 자신을 가장 ‘낮추는 자’이며 완전히 부서져서 가장 ‘작은 알갱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 시편에서 말하는 진정으로 ‘가난한 자’이다.
누가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와 역사에 쓰임을 받는가?
바로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가장 작아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은 스스로 작아지는 것에 온 열정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이 천국 복음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온통
‘커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흥’이고 ‘번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열방의 교회가 이토록 열심인데 ‘하나님의 영광의 다스림’을 만나기가
희귀한 것인가?
한동안 나 자신을 연약함을 돌아보며 그 의문에 빠졌었다.
갈릴리에서 주님의 길을 탐구하는 동안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겐 천국복음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적 교훈만 도출할 뿐 진정한 비밀이 열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것에 눈을 뜬 이후에 무려 3년간을 연구에 집중하였다.
거의 매일 이 천국 복음을 알기 위해서 간구하고 매달렸다.
그러면서 이 안에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과 능력, 예언적인 구조들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사32:1

 

이사야를 통하여 예수님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신 말씀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공의로 통치 하신다’고 하셨다.
여기서 ‘통치하다’라는 히브리어는 ‘말라크’이다.
이것이 곧 신약의 ‘바실레이아’, ‘나라’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 메시아를 통해서 공의로 다스리시는 왕국을 꿈꾸었다.
그리고 ‘방백들’은 ‘사르’, 곧 ‘지도자들’이다.
예수님께 이들은 ‘제자들’이다.
그들 역시 ‘정의’로 다스리는 자들이다.
여러번 나누었지만 이 ‘정의’는 ‘미쉬파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규례요 법령으로 심판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바로 이 ‘공의와 정의로 다스림’을 계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다.
진정한 예수님의 방백들, 그의 제자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만 한다.
이 말씀이 열려야만  ‘광풍의 피하는 곳’에 이른다.
이 ‘광풍’의 히브리어는 ‘루아흐(성령)’이다.
그리고 ‘피하는 곳’은 ‘은신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번역과 달리 이 의미는 ‘성령의 깊은 곳에 거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알 때에 성령님의 깊고 비밀한 임재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천국 복음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놀라운 것이었다.
‘팔복’ 역시 그동안 영상작업과 책들을 냈을 만큼 많은 탐구를 했으나 그 안의
깊은 아버지의 마음, 공의와 정의를 만지지 못했다.
‘7가지 천국 비유’는 창세기 1장의 ‘창조 7일’과 ‘일곱 절기’, 그리고 계시록의
‘일곱 교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마치 솔로몬의 성전 앞에 세워진 기둥의 머리에 ‘일곱개’의 ‘바둑판무늬 그물’을
새긴 것처럼 치밀한 구조로 연결된 것이다.
갈릴리에서 행하신 주님의 역사와 가르치신 말씀들은 창조의 비밀과
마지막 때의 하나님 역사를 실제적으로 담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 복음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우리는 그동안 이것을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열정에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눈 것에 의하면 이 ‘천국복음’은 그것이 아니다.
그 구원의 복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정확히 말씀하신 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은 앞에서 계속 말씀하시던 ‘마지막 때'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주님은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질 역사들을 ‘그 때에 천국은..’이라고 하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영광 가운데 임하고 역사되는가를 예언하신 것이다.
그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이루어져야 ‘끝’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것에 깊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전통적인 생각과 일부 각단적인 종말론 추구자들의 주장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2,3


외적인 열심히 유대인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정통 유대인들을 많이 접하고 촬영했던 나로서는 지금도 그들의 열시엔
열등감조차 느낄 지경이다.
문제는 우리의 외적인 열심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진리의 지식에 거해야만 한다.
서구의 교회는 대부흥을 가장 많이 체험했고 신앙적 열심 또한 대단했다.
수년간 <부흥의 여정>이라는 영상과 책을 만들었던 경험으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상상 할 수 없는 현재의 그 황무함은 왜 생긴 것일까?
정답은 하나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는 가장 지적이라고 자부하던 수많은 신학이 난무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
‘지식’이라는 히브리어 ‘다아트’는 단순한 정보 이상의 ‘아버지의 마음’이다.
여기서 진정한 ‘지혜와 지식의 말씀’(고전12:8)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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