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사마리아-영적 예배의 본원(1)

  • 김우현
  • 조회 5348
  • 2014.02.07 15:26

1.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4:5,6
 


예수님은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사마리아의 길’을 다시 이용하셨다.
잘 알려진대로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그 길로 다니지 않았다.
이방에 끌려가 혼잡 되어버린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을 원수처럼 여기고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길로 가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인간적인 마음이 아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진리’(요16:13), 곧 ‘언약’가운데로 이끄신 것이다.
앞에서도 나누었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여정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그 안에 깊은 하늘의 비밀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신 삶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1:14)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태초부터 있던 ‘하나님의 생명’이 인자로 오신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는
의미이다.
‘거한다’는 말은 ‘스케노오’ 곧 ‘장막을 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여정 안에 하나님께서 ‘빛’과 ‘영광’으로 임재하신 것이다.
그래서 특히 요한의 복음서를 읽을 때에 ‘시간과 장소’, ‘사람과 사건’하나 하나를
주의 하여 깊이 읽으려 해야 한다.
이 영광스러운 주님의 길을 세심히 읽어내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진리는
너무나 협소하고 개인적인 적용꺼리로 둔갑한다.
바울은 우리가 놓친 교회의 사명을 말하고 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3:10-12
 

교회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감추인 비밀, 하늘의 여러 가지 ‘지혜’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깊은 집중력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들어가신 시간과 장소를 아주 세심하게 기록했다.
‘수가라는 동네’, ‘야곱의 우물’, ‘요셉에게 준 땅’, ‘여섯시’는 매우 중요한 언약적인
개념들이다.
‘수가’는 ‘쉬카르’라는 말인데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나환자’를 ‘이방인’(눅17:18)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계19:10)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은 ‘예언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2천 년 전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께서 영을 부여하셔서
말세를 당한 우리를 위한 전략과 길들을 계시하신 것이다.
수가에서의 일을 ‘마지막 때’의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땅은 요셉에게 기업으로 준 땅인데 그는 이방에 가서 신부를 얻고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얻었다.
요셉은 성경에서 대표적인 ‘메시아의 모형’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은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만이 아니다.
‘요셉의 자손’으로도 중요하게 인식하였다.
그것은 요셉이 다윗만큼이나 중요한 ‘예표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방으로 가는 메시아이다.
예수님의 사마리아의 여정은 마지막 때 교회에 대한 깊은 예언을 나타낸다.
그것을 더욱 확증하는 것이 바로 ‘여섯시’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시간은 ‘정오 즈음’이다.
유대의 시간으로 계산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마태나 다른 복음서들은 ‘유대의 시간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당시 로마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시간으로
복음서를 쓰고 있다.
요한복음을 읽으면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유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임을
알게 된다.
바로 앞에서도 그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다”(요2:13)고 기록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유대인이라면 ‘유월절’이 자기들의 절기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요한은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요5:1)라고
친절히 설명한다.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은 계시록처럼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은 이런 시간개념을 단순히 정보를 주기 위하여만 기록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요1:39)라는 구절이다.
갈릴리에서 두 제자가 예수님의 ‘계신 곳’을 찾아가 함께 거한 시간은
‘열 시쯤’이라고 했다.
왜 이런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을까?
성경에서 ‘10’이라는 숫자는 ‘충만 수’이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이방으로 흩어진 북이스라엘의 ‘10지파’를 상징한다.
물론 그들이 주님과 함께한 시간이지만 이것은 어떤 영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2:1


요한은 유독 다른 제자들 보다 예수님께서 움직이시는 ‘시간과 요일’을 여러 번,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요
한복음 1장 시작부터 ‘창조의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창1:3)하신 말씀을
그리스도를 통해 해석한다.
그리고 ‘이튿날’(요1:290, ‘또 이튿날’, ‘사흘째 되는 날’(요2:1)등을 반복하여
기술하였다.
이것은 요한이 예수님의 여정을 ‘창조의 날들’, 하나님의 나라의 빛(진리)가운데
걸어가는 여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내가 이것을 장황하게 나누는 것은 주님의 ‘사마리아 여정’이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일반적인 이해처럼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들이 꺼리는 땅에 가서
남편이 다섯이나 되는 음란한 여인까지 품으신 주님 정도로 읽어내면
요한이 의도한 영적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사마리아에 여러 번 가면서 계속 그 땅에 오신 주님의 걸음과 풍경 속에
감추인 비밀을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그러자 너무나 깊고 놀라운 언약의 고리들이 역시 그물처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깨닫는 것에 먼저 가져야할 기초가 요한의 시간 개념과 영적 의도이다.
주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신 ‘여섯시’라는 시간은 대부분이 생각하는
‘정오(낮 12시) 즈음’이 아니라 ‘저녁 여섯시 즈음’이다.
로마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에 그들의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요한이 그런 시간 갠며을 가졌다는 것은 신학자들에게 검증된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4:6)라고 자세히 기록했다.
예수님이 피곤하시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예수님은 물론 당시 유대인들은 무수한 시간과 거리들을 걸어서 다녔다.
그런 그들에게 낮 12시는 결코 피곤하여 지칠만한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하루를 끝마쳐 가는 저녁 여섯시, 곧 ‘해질 무렵’인 것이다.
그 시간을 히브리어로 ‘에레브’라고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 해질 무렵의 풍경은 성경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시간인데 곧 ‘하루의 시작’이며
‘어린 양’을 잡아서 저녁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스9:5


에스라는 ‘저녁 제사’드릴 때에 옷을 찢으며 깊은 회개를 하였다.
이것은 다니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하루 세 번 금식하며 회개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저녁 기도시간(여섯시)에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다니엘에게
온 것이다(단9: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제사’를 명하셨다.
흠없는 ‘양 두 마리’를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라”(출29:39)고 하신 것이다.
애굽의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유월절 어린 양 역시 ‘해질 무렵에 잡으라고
명하셨다(출12:6).
이 시간이 저녁 여섯시. 해질 무렵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가’에 ‘저녁 여섯시’에 앉으신 것은 놀라운
메시아의 시간과 길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저녁 제사’드리는 시간에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가셔서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뜻밖에도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4:23)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도 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사마리아에서 이것을 말씀하셨을까?
이것은 ‘마지막 때’에 아버지가 ‘이방의 교회(사마리아)’에서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것이다.
사마리아의 비밀을 계속 구할 때에 그것이 읽혀지기 시작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20

 

사마리아의 여인이 한 이 말은 사실이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 할 때에 사마리아의 사람들도
동참하기를 원했다(느4:1-3).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방에 혼합된 그들이 거룩한 성전의 회복에 동참하는 것을
극히 반대하였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은 주변의 이방 족속들을 동원해
성전을 쳐서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이만큼 이 두 민족은 한 동족이면서도 원수지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록 사마리아가 이방에 섞였지만 유다가 큰 그릇으로 받아 주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유대인’만의 것이 아니다.
‘만민(all nations)이 기도하는 집’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 가셨을 때에 거기서 매매하고 환전하는 것을 다 부수고
분노하셨다.
온유하신 주님이 왜 거기서 그렇게 화를 내신 것일까?
그 장소가 바로 ‘이방인의 뜰’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땅 끝의 이방인들도
성전에서 주의 얼굴을 구하고 기도하는 집‘(왕상8:41-43)이 되게 해달라고 구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기도요 예배였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증오하여 ‘이방인의 뜰’을 자기들의
유익을 위하여 장사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이방인들의 공간을 빼앗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주님께서 매우 싫어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영과 진리의 예배’에 상반되는 것이다.
결국 다시 건축된 성전에서는 유대인들만 예배를 드렸다.
이방에 섞인 사마리아와 갈릴리등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뼈아픈 상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후에 헬라의 알렉산더가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산발랏은 자기들에게도
성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알렉산더는 그것을 들어 주었고 세겜의 ‘그리심산’에 성전을 지은 것이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의 조상들은 거기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성전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졌지만 그리심산의 성전은 3세기도 못되어
무너진 것이다.
나는 이 역사적인 배경들을 탐구하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정한 예배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 ‘헬라’가 지은 ‘사마리아의 성전’은 어쩌면 우리 교회를 예표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방인들로 구성된 우리의 교회는 헬라의 사상을 기반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복음이 확산된 로마, 그리스 등 유럽은 헬레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지경들이다.
그래서 초기부터 교회는 헬라적인 사상과 접합이 되었고 서구의 신학이 그 체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면서 절정에 올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체계아래서 발전하였다.
종교개혁이 다시 성경의 근원적 뿌리인 ‘히브리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가지고 일어났지만 그 바탕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성경 이해나 예배의 구조는 사실 매우 헬라적인
요소가 당하다.
사마리아의 이 사건이 이방의 교회를 상징한다는 다른 단서가 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4:17,18


우리는 이 말로 여인이 음란한 ‘창녀’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게다가 정오의 시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물을 길러 온 여인이니 부정한
여인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 ‘여섯시’는 정오가 아니라 정말 저녁 시간이라는 것을 정리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남편 다섯’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이 사마리아의 배경을 연구하려면 호세아서를 읽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상을 숭배하여 흩어진 북이스라엘, 에브라임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남편 다섯의’ 비밀을 깨달았다.
호세아는 반복하여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호7:1)을 지적하신다.
그들이 ‘음행’을 하여 ‘이방의 왕들’ 곧 ‘남편들’을 찾아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에 찾아간 이방의 남편은 ‘앗수르, 애굽, 페르샤, 바벨론,
헬라, 로마‘등 ’다섯 나라‘였다.
그것은 그들을 지배한 나라이고 흩어져 간 ‘이방 지역’을 가리킨다.
특히 사마리아는 이 다섯 나라들의 지배를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남편 다섯’이 우리 교회가 지배와 영향을 받을 이방의
체계에 대한 예언적인 예표라고 생각한다.
사마리아처럼 우리 교회가 이방적인, 세상적인 것, 헬라적인 것과 혼합되는 예배가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헬라에 의하여 세워진 ‘사마리아의 성전’은 이방의 교회, 곧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지금의 ‘유대인’과 연결되어진다.
그러나 아버지가 찾으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오직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다.
사마리아의 여정은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계시하고 있다.

예슈아 (73.♡.64.221)
등록합니다
장재선 (219.♡.140.227)
정말 당혹그럽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후세에 와서 창녀로 오인되다니 이런여인을 보고 메사야께서 영적인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요4:24) 얘기를 했을까요! 천만에요! 이 여인은 율법적으로는 완벽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신25:5, 마22:25~28]을 자세히 봉독해 보세요!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리스도라고 헬라식아니 하고 [메사야]라고 히브리어로 구세주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누구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창녀는 그런데 신경 안써요! 다섯 번째 남편은 다섯 째 시동생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셨을때 깜작 놀랐습니다. 이런 말씀은 요한복음에는 없지만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돌았습니까! 창녀 말을 듣고 나오게요!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요4:24) 고 왜 예수아 메사야께서 이 여인보고 얘기 했겠나요!
 [혼]하고는 애기 못 한 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영]하고 소통한다는 얘기니까 너희들이 [영]을 받아라 이 말이죠! [영]을 어떻게 받죠!
 roman3488@naver.com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재선
장재선 (219.♡.140.227)
[요4:23]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KJV] "23 But the hour cometh, and now is, when the true worshippers sha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eth such to worship him."  [영]과 [진리]경배하는 자를 찾으시겠다잖아요! [영]을 어떻게 받아야 돼죠? 그리고 [진리]는 KJV [요일5:6]에 [성령님]이라고 명시되어 있어요!
[영]은 오순절이후에 누구든지 받을 수 있어요. [요엘2:28,고전12:7~11] "성령님이 오시면 [영]으로 산다"고 했잖아요!
장재선 (219.♡.140.227)
[행2:38] "이 약속(성령님께서 오신다.=선물)은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 이니라" 예슈아님께서는 [요3:6]에 무엇이라 말씀하셨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셨잖아요! 성경에 보면 예슈아 메사야도 [태초]로 [성령님]으로부터 나으신 분이고 그 다음은 마가 다락방으로 이어져 오는 메사야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영]이 잠자는 데서 태어 난 [영]입니다.
장재선 (219.♡.140.227)
당신 [혼]이 [예수 메사야]를 믿고 시인하면 [영]이 어린아이와 같이 태어납니다.
그러면서 성경[개역한글-번역과 오류가 있는-]을 자기 나이만큼 봉독하면서 깨닫게 되고, 말씀들을 들어가면서 가끔 패러독스에 의문도 가지게 됩니다.
점차 [영]이 자라면서 저 마냥 신학도 해보고 여러 성경[NIV, KJV, 헬라어, 히브리어]도 좀 빈약하지만 들쳐보고, 세계성경역사도 뒤져보고, 인제 60이 넘어서야 진짜의 적그리스도이 카톨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재선 (219.♡.140.227)
..성경말씀을 KJV까지 합하여 자랑은 아니지만 100번 남짓하게 봉독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KJV[흠정역]와 NIV[개역한글]는 틀리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봉독하는 동안 너무나 헬라어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을 봉독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1:41절 "메사야" 그리스도라고 번역(헬라어)해논 것을 성경 내내 수가성여인만 빼 놓고는 헬라어로
써 놓았고, [행 21,22장]에서 바울이 연설할 때 썼던 언어가 무슨 언어 이었으며? 7장 스테판이 헬라어로 말 했으면
유대인들이 매국노라고 말도 못 꺼내게 했을 것입니다.
장재선 (219.♡.140.227)
이러므로 [4복음서]나 [사도행전]은
처음에는 [히브리어]로 쓰여 졌을 것으로 나중에 로마가 왕성해 지면서 [헬라문명]이 활발해지고 이어 [라틴문화]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여기부터 [속임 수]가 이었습니다.
1. [십계명은 지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15장]을 잘 봉독 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조상들이 지지 옷 하던 [멍에]를 지우려고 하느냐?" 십계명은 십자가에서 이미 씼어 버렸습니다.

2. [사도행전2:38] "이 약속(성령님께서 오신다=선물)은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 이니라"
장재선 (219.♡.140.227)
다시 쉽게 말 말하면
3. [갈라디아서 3:14]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이신칭의]이 예수님을 통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가 믿음을 통해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니라"
즉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에 아브라함을 통해 받은 [이신칭의]가 누구? 나? 혹? 너? 예수님을 믿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메사야]를 믿고 시인하면 죽으면 [부활]이요!
마지막 때에는 살아 있으면 [휴거]라고 끊임없이 경고(살전,마,요,막,눅,고전 등)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도? 목사님들도 못 믿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신칭의] 때문에
장재선 (219.♡.140.227)
마귀들한테도 떳떳하게 부활할 수가 있지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지 못하셨다면 우리도 부활하지 못합니다.
 [히3:6] "메사야께서는 자신의 집의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과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에
집(고전3:16)이니라"
[요엘2:28,고전12:7~11] "성령님이 오시면 영으로 산다"
[유월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초실절]- 첫주일
[오순절]- [성령님]이 오심(선물=행2:38)
[나팔절]- 다시오심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오셨듯이 언젠가에 나팔절에 재림하심니다
[다니엘서]는 메사야 예수님께서 오실 머지막 때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단12:2]을 잘 상고 하면 마지막 재림 때에는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죽은 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깨어나(부활) 얼마는 영존하는 생멍에 이르고(천국)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지옥)에 이르며
[단12:3] "지혜로운 자(메사야 예수님 믿는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전도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특히 [다니엘서]는 1~5장은 [바벨론제국]을 6장부터는 [페르시아제국]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는데
[바벨론제국]에서와 [페르시아(메데)제국]에서 연 이어 총리를 역임하고 있다.
사실 [바벨론제국]의 신하였던 메데와 페르시아 지역의 왕 이였던 다리오는
가우마타의 [바벨론제국]의 반란으로 다리오는 60세로 [바벨론제국]의 황제로 추대 되었는데
[다니엘]은 이미 다리오의 사위였다.
장재선 (219.♡.140.227)
* 사자굴 사건 때 다니엘은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다리오가 [바벨론제국]의 권력이 막강한 부하들한테
얼떨결에 황제의 자리를 추대 받았지만
사위 다니엘은 총리를 맡아 [다리오]로 황제로 추대 하는 데는
기여하였지만은 [바벨론제국]의 부하들이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죽일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다니엘한테 이런 정보가 비밀리에 들려져 왔다.
새 왕인 다리오한테 한 달 동안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경배를 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
라고 [바벨론제국]의 신하들이 칙령을 국가의 기강을 잡으려고 한다고 다리오황제한테
인장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매일 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장재선 (219.♡.140.227)
그리하여 장인 다리오한테도 아무소리도 않고 잠잠히 있었고, 사자 굴에서 나오고 나서 [바벨론제국]에서 [바벨론제국]의 신하들을 모두 죽이고, 황제자리를 이어 받은 아들이 [페르시아(메데)제국=이란] [고레스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동서지간 인 [고레스; 이란의 시조]가 예루살렘을 재건축하라고 하며, 빼앗서 갔던 성전의 기물도 모두 돌려주었던 것입니다. [이란의 역사참조]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는 다니엘의 조카, [다리오3세]는 다니엘의 손자
장재선 (219.♡.140.227)
잠시 딴 데로 흘러갔는데요!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할 점은 [영]이 살았다고 하여 다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행15장]을 잘 봉독 하여 보세요! 그레도 모르시면 [에배소서]를 읽어 보세요. 특히 [5:3]은 마음속에 외우세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누구든지 [영]이 심판대에 서야 하는 날 잘 잘못을 평가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회개]가 누구나 필요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우리 [영]의 생각을 아시 나니까요!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그 [영](소문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장재선 (219.♡.140.227)
[KJV Rom 8:27] "And he[Spirit] that searcheth the hearts knoweth what [is] the mind of the S[spirit]대문자가 아니고 소문자, because he[Spirit] maketh intercession for the saint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저도 바울사도께서 한 여러 가지 말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메사야께서 오시고 난 후부터는 다시 아브라함시대 이전의 모세의 성문법(십계명)이 아니고 불문법(양심의 법)입니다.
왜냐하면 일시 이스라엘에 임시 적용했던 하나님과의 십계명의 약속이 깨지고, 다시 본래대로 되돌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천국에서 여러분들을 만나 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씁니다.

[주후 2015년 5월 어버이날]
에바브로디… (219.♡.140.227)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건데!
여기 [버드나무아래]에서 [바벨론 다큐]를 듣고 나머지를 youtobe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역사학자들이 한 가지 틀린 점은 페르시아가 쳐들어 온 것이 아니고
나이 많은 다리오1세가 얼떨결에 바벨론의 황제가 되서 [사자 굴 사건]에
다니엘이 바벨론의 신하들을 모두 제압하자 황제의 자리를 자기 아들인
[고레스: 페르시아; 이란의 시조]한테 물려주고서 그 화려 했던 바벨론 궁전과 공중정원,
주거지역 등 모든 것을 후세에도 모르게 특히, 바벨탑까지 완전히 부시고,
[다니엘]이 흙으로 덮어서 없애 버렸던 것입니다. 그 뒤에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총리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웅장하고 굉장한 규모를 왜 없애버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후세에의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예견하고 묻어 두었습니다.

 이로써 다니엘은 성경에는 이런 말씀은 안 쓰였지만
바벨탑의 존재를 후세에까지 땅 속에 묻어 두었을 뿐더러
그로 인하여 난무하는 우사숭배까지 모두 다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단6장] 마지막 절에 가면 “다니엘이 다리오의 통치와 페르시아 사람
고레스의 통치 때에 형통하였더라.”라고 말씀이 쓰여져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 고레스 때에도 역시 총리를 하였던 것입니다.
 페르시아 총리를 하는 동안 바벨론의 역사를
이 세상에 하나도 남지 않도록 모두 철저하게 태우고,
땅 속에 묻어 두었는데 1900년대에 들어와서 처음 바벨론을 발견하여 때,
성경을 신화라고 하며 우기던 역사학자들이 코가 납작하게
바벨론이 실제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았습니다. 

[단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작은 뿔]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뿔]은 [마지막 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①[단7:8] “열 뿔을 깊이 살펴보는데 보라 다른 작은 뿔이 그것들 가운데서 나오더니” 작은 뿔이 일어나는 시기는 언제인가?: 열 뿔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데 다른 작은 뿔이 열 뿔로 가운데(서로마제국일 때⇒ (비잔틴제국)서 일어난다 바티칸, 로마 카톨릭  혹 자는 마지막 때 서부유럽에서 10개국이 일어 난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이미 지나간 세계사이다.

②[단7:8] “그것들(열 뿔) 가운데서” 작은 뿔이 일어나는 장소는 어디인가?: 서부유럽 10국(Anglo Saxons, Franks, Alamanni, Lombards, Visigoths, Burgundis, Suevi, Heruli, Vandals, Ravenna.)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은?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③[단7:8] “처음 뿔들 중의 셋이 뽑힘” 작은 뿔이 일어날 때 생기는 일이 무엇인가?: 먼저 나온 열 뿔 중 세 뿔이 그 앞에서 멸망하지는 않고 세 나라의 형세들이 시들음. (Heruli, Vandals, Ravenna) 시들음.

④[단7:8, 20]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심히 큰일들을 말하는 입이 있다” 작은 뿔(나라)이 열 뿔(나라)과 다른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의 눈 같은 눈들(감시)이 있으며 하나님의 일들을 말하는 입(하나님처럼 말하고 공표하는 말들 하는)이 있다.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⑤[단7:20] “그의 동료들보다 더 견고” 작은 뿔의 형태 즉 형상과 태어난 모습은 무엇인가?: 작지만 열 뿔보다 결속적으로 강대국 형태(작은 뿔)=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⑥[단7:21] “그 뿔이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겼다” 작은 뿔이 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어떻게 됐나?: 그 다른 작은 뿔은 성도들을 이기고 종교를 지배함  바티칸, 로마 카톨릭
 
[11편]
⑦[단7:25]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를 대적하려고 엄청난 말들을 하며” 작은 뿔의 행태 즉 행하고 태도는 무엇인가?: 말로 하나님에 대하여 신성모독하고 대적함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⑧[단7:25]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지치게 하고” 작은 뿔의 종교적 특성과 태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함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⑨[단7:25]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경” 작은 뿔의 중심활동은 무엇인가?: 성도들을 멸망시켜 마지막 때를 오지 못하게 막고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함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⑩[단7:25] “한 때, 두 때, 반 때까지 손에 주어지리라” [계13:14] “그의 머리들(열한 뿔) 중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이와같은 작은 뿔의 존속기간은 언제까지인가?: 한 때, 두 때, 반 때⇒3년 반⇒42개월⇒1260년 동안 손힘을 발휘하고는 잠시 죽은 것 같이 하며 [마지막 때]에 다시 일어난다.  바티칸, 로마 카톨릭
  역사학자 리베라의 풀이한 것을 보면
 * To accomplish this, Ribera proposed that the 1260 days and 42 months and 3½ times of prophecy were not 1260 years as based on the year-day principle (Numbers 14:34 “After the number of the days in which ye searched the land, even forty days, each day for a year, shall ye bear your iniquities, even forty years, and ye shall know my breach of promise.” and Ezekiel 4:6 “And when thou hast accomplished them, lie again on thy right side, and thou shalt bear the iniquity of the house of Judah forty days: I have appointed thee each day for a year.”), but a literal 3½(=42개월=1260일=1260년) years, hence preventing the arrival of the deduction of the 1260 years to be related to the Dark Ages (according to the Historicism (Christianity) interpretation of eschatology from A.D.538 when the papal power was fully established in Rome until its political blow in A.D.1798, when Louis-Alexandre Berthier the general of Napoleon captured pope Pius VI as prisoner to Valence, France) and the Antichrist to be related to papacy.

⑪[단7:26] “통치 권세를 빼앗김” 작은 뿔의 세상에서의 통치와 세력은 어떻게 되는가?: 국가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무소불위한 힘을 빼앗기고 숨을 죽인 듯이 잠잠히 산다. 나폴레옹한테 빼앗김      바티칸, 로마 카톨릭
 
⑫[계13:3] “그(작은 뿔⇒계시록 13장에서는 짐승)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이후 작은 뿔의 마지막의 형세는 무엇인가?: 작은 뿔이 잠잠히 하다가 있다가 [종교통합]으로 다시 산다.    바티칸, 로마 카톨릭

 로마 카톨릭이 아직은 적그리스도의 모습도 안 보이지만 누군가가 [카톨릭]을 통해 [마지막 때]가 오면 [평화의 형상]으로 옵니다.
 그때가 오면 [제3성전]도 지어 졌고, 이제는 [마 24:15]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라는 것을 아시고 곧 휴거가 임박하실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Sir lsaac Newton]의 저서 “Observations upon the prophecies of Daniel”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단7]장을 여러 각도로 다시 설명 하며는
 단 7:12 그 나머지 짐승들로 말하건대 그들이 자기들의 통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들의 생명은 한 시기와 때 동안 연장되었더라.

 해석. 그 나머지 짐승들[7뿔들]로 말[말에 복종]하건대 그들이 자기들의 통치 권세를 빼앗겼으나[AD538년 유럽의 나라들은 [로마카톨릭]에게 주권을 빼앗겼다 ⇒ 로마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한 James Aitken Wylie의 책인 종교개혁의 역사(History of the Reformation)에서는 “AD 538년에 로마교회(로마카톨릭)의 감독(교황)은 세상 모든 교회들을 머리가 되었고 이단자(소위 로마카톨릭에서 말하는)들을 처벌하는 자가 되었으며, 또 한 그 해에부터 1260(단7:25⇒다음에 자세히 얘기 할 것임)년간의 교항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나폴레옹 군대의 장관 Berthier가 바티칸에서 교황권의 철회를 함으로써 교황시대는 AD1798년 막을 내렸다 되었다”] 그들의 생명[서유럽의 일곱 뿔(나라)들 멸망하지 않고 =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프랑스, 터어키 등]은 한 시기와 때 동안 연장[마지막 때까지 연장]되었더라.

 이 기간 동안에 바티칸이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기독교를 빙자해 유대인과 모슬렘인들을 악랄하고 무자비 하게 죽여 지금도 기독교를 치를 떨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히틀러를 몰래 앞세워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이는 등 바티칸의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는 듯 하지만, 내면에는 사탄 음흉한 사악함이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이슬람인 간의 이간하는 악랄한 수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것을 안다 해도 ~  하나님의 뜻이면 누가!

 저는 청주 북문로장로교회 다니다가 5학년 때 수동천주교회로 옮겨 청주중학1학년에 영세[1967.3.2일.영세명:다니엘]를 받고 레지오 단장까지 지내오다가 서울로 이사 와서 응암동에 함ㅅㅇ신부 때문에 그만 두었다가 1979년에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로 돌아 왔습니다.
 저는 두 번이나 뇌출혈로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는 2014년 12월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주일 예배 중에 환상으로 큰 [빨간 십자가]가 성전 가운데에 나타나 서서히 제 가슴으로 와서 박혔습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 까닭을 얘기하고 제 처보고 "빨간 십자가가 내 가슴에 와서 박혔어!"라고 하니까! 제 처가 "지금도 가슴에 있어?" 그래서 제가 "그럼~ 있지!" 그러니까 제 처가 "당신 얼굴이 빨개! 라고 하였습니다.
 그 주 금요일에 철야기도를 가기 위해 렉싱턴 호텔 옆에 있는 커피숖에 있을 때, 오른쪽뇌출혈로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2002년10월 선교 같다 와서 왼쪽뇌출혈로 오른쪽이 완전마비 되었었습니다.
 
 2002년 이후 일산백병원 의사가 [두 군데의 뇌출혈 범위-당시의 MRI 사진]로 봐서는
“10년 후에야 조금 앉아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으며, 말도 못 하고, 기억력도 없다고 하였다.”고
제 처가 백병원 의사가 “말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나, 저는 28일 간 인사불성으로 있었으며, 기억력과 말은 일 년간이나 못했고,
서서히 괜찮아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의 기억력은 점점 이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10여 년 동안 윌췌워를 타고, 절룩거리며 엄청나게 국내, 외로 다녔습니다.
병산이라는 것은 “조금 불편한 것 뿐”이지 “바보는 아니란 것”입니다.
 성경을 이후로 다시 읽었습니다.
 자기 나이만큼 읽어야 된다고 해서 그보다 도 더 많이 봉독하였습니다.
 
 다니엘서에 대해서~
 어떤 유대인들이 무슨?(잃어 버렸는데 혹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인용하셨기 때문에?) 이유인지 [다니엘서]를 성경에서 없애자고 한다고, 그러던데 그건 [갈대아 우르]에서 온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욕]하는 거예요!
 멘 처음에 바벨론으로 유배 됐을 때 만 해도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떠나가기 싫어했는데
[아브라함]이 살던 곳 [우르]라는 데에 얼마나 [다니엘]이  감격해야 했는지 아시나 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나서 또, 다시 우상에 빠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2세를 통해 이스라엘민족을 아브라함이 자라났던 [우르]로 데리고 와서 
20세부터 총리를 한 [다니엘]을 힘입어 이스라엘민족이 [70년 동안 유배]를 하고,
니므롯에서 느부갓네살까지 갈대아에 흐르는 [니므롯의 바벨탑의 우상숭배]의 저주를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 민족들과 이스라엘민족이 보는 앞에서 다리오의 총리 겸 사위 혹 손위 동서 [다니엘]이
보기 좋게 부셔 뜨려 흙에 묻어 버리고,
아브라함처럼 주눅이 들지 않고 이스라엘민족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 깨끗한 마음으로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해
이스라엘민족이 혼자 남아 있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총리 [다니엘]을 뒤에,
[예슈아]님의 조상 스룹바벨을 앞에 내 세워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이 아니고, 이 사건은 “출 바벨론과 페르시아”이라고 해야 됩니다.

 따라서 이 다니엘의 사건은 30세의 요셉의 총리되었던 사건보다도 더 큰 사건이며,
아브라함의 탈출한 우르와 모세의 출애굽을 더하기를 한 [다니엘]은
출[우르와 바벨론과 페르시아]라고 성경역사학자들이 재조명해야 된다고 사료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을 땅에 완전히 묻으려고 자신의 업적을 남겨 놓지 않아서 그렇지
4대 느부갓네살 2세, 벨사살(예루실렘 침공 후 70년 후 망했다=다니엘이 끌려와서 20?세 때 총리를 하였다 해도),
60세의 다리오황제(메데,페르시아 때는 다니엘 81세? 이상 -다리오가 느부갓네살 왕위10년에 태어났으니까),
고레스의 총리였다면 얼마나 많은 세력이 있겠습니까?
 [단 1,6장] 보면 “다니엘은 고레스 때에도 형통하였다”고 했습니다.
 
 [구글]에 이란의 다니엘 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다니엘]은 노아와 욥과 같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인입니다.
 그 다음이 [단9장] 마지막 때까지의 이스라엘에 기한이 70이레인데,
예루살렘도시를 재건하라는 명령이 난 7이레와 62이레에 “[메사야]께서 오셨습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따져 봅시다!
예루살렘도시를 재건하라는 명령 난 후 69이레인데, 1이레는 7넌,
69×7=483년, 성경의 1년은 360일(노아)
483×360=173880일 ▷ 현대 일로 계산 173880÷365.25=475년
언제 명령이 내려졌나요?
[느헤미야] “2:1~ 아닥사스다 왕 제12년 니산월
예루살렘도시를 재건하도록 명령함“
 아닥사스다 왕 제12년은 BC 445년 - 475년 = AD32년
 이 역사를 알고 나면 [다니엘서]가 얼마나 잘 쓰여 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틀렸다면 틀렸다고 예수님께서 그러셨을 거예요!
 구약에서는 그런 말씀은 안 하셨거든요!
 신약은 쓰기 전이니까요!
 [단1~6장]까지는 느부갓네살에서부터 다리오까지 70년간의 바벨론역사이고요!
 [단7~12장]은 다니엘이 꿈을 꾼 차례대로입니다.
 [단7장]은 “바빌론 왕 벨사살의 제일 년에 다니엘이 자기 침상에서 꿈을 꾸며”
 [단8장] “벨사살 왕의 통치 제삼 년에 한 환상”이
 [단9장]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다리오가 갈대아 바벨론 황제가 된 후
“다리오가 갈대아 사람들의 영토를 다스릴 왕으로 세워진 첫 해”
 다니엘의 환상이 “예루살렘이 황폐한 가운데 칠십 년을 채우시리라는 것을 깨달으니라!”
 [단10장] 다리오가 아들인 고레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난 이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삼 년”에
 [단11장] “메대 사람 다리오의 제일 년”은 고레스의 아들 다리오 3세를 말함
 [단12장] 11장에 이어 [메사야께서 재림]하실 때

 이제 “제 3성전”입니다.
 
[단12:2]을 잘 상고 하면 마지막 재림 때에는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죽은 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깨어나(부활)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고(천국)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지옥)에 이르며
[단12:3] "지혜로운 자(메사야 예수님 믿는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전도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에바브로디… (219.♡.140.227)
마지막 이스라엘에게는 1이레가 남았습니다.
7년이 남았단 말이죠!
이 7년이 제3성전 건축하고 난후부터
[마25:32]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2500년 전에 예언하여 왔던 말씀입니다.
다니엘의 2500년 숨겨져 왔던 바벨론제국을 발견한 것보다도 더한 것으로,
망했던 한 나라가 다시 되 살아났다던 전후무후 한 예언입니다.
아랍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국가와 2500년 동안 배꼽잡고 웃던 사탄, 귀신들도 깜짝 놀랐을 겁니다.
서서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을 의미 합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잎사귀 즉, 독립이냐, 1948년 5월 14일
혹 예루살렘 입성이냐 1967년 6월 7일
독립이면 이 세대(1948+50년=1998년)가 지나갔고,
예루살렘 입성이면 이 세대(1967+50년=2017년),
이 세대가 50년이냐 60년이냐 70년이냐에 따라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마24:34]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
에바브로디… (219.♡.140.227)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예슈아 메사야께서 [마24:15]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라고 하셨는데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예슈아 메사야께서 [마24:15]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김종철감독인가 하는 사람이 [제3성전]을 찍었잖아요!
그 [제3성전]이 들어서면 나머지 메노라, 십현금, 붉은 암송아지 등은 이미 갖추게 될 것입니다.1528
에바브로디… (219.♡.140.227)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셨기에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님께서 [요3:6]에 말씀하신 다 [영]을 받고(=다시 태어나고) [성령님]과 함께 알건 모르건 동행 하며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영]을 받고 [은혜]에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 [영]이 밝히 뜨여서 죽기 전 스테판처럼 예수님께서 서신 것을 본 사람도 있고, 저희 어머니처럼 돌아가시기 3일 전에 “3일 후에 죽으니까 다 모아라”라고 하셨고 미국에 있는 형만 못 불렀습니다.
 많은 지역식구들 가운데도 은혜로 살다 낙원(=예수님께서 재림하면 천국)에 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간혹 어떤 분들은 은혜로 살다가 자기 욕심에 못 이긴 우울증으로 최진ㅅ같이 자살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안 보내셨으면 우리는 예수님 [요 3:5] 말씀대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라고 분명히 결론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나지 아니 하면”이 전제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에 피 입니다.
 [영]부터 살아야 하지 본체가 살지 않으면 피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영]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갈 수 없는 데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좀 심하게 말하면 [성령님]이 없는 곳, 교회 같은 교회는 다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없으니까요!
  천국이 없으면 돈 만 뜯어내는 사기지요!
  그래서 통일교, 신천지, 제칠일안식일교, 전도관, 천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