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완전한 진리의 여정-시편연구-5

  • 김우현
  • 조회 1059
  • 2016.09.06 12:24

5.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편 2:1-2

 

이제 본격적으로 시편의 맛을 보고자 합니다.

시1편과 2편은 저자나 '표제'가 없는데 이것은 서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시 1:1)라고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의인들'에 대조되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가 

2편에서는 앞에서 읽은 것처럼 '이방나라'와 '민족들', '세상 군왕들'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것들이 서로 상관이 없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경 읽기는 대부분 문자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편집자들은 여러 시들을 취합해서 그것의 영적인 의미가 이어지도록 편집했다는 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1편과 2편은 서로 이어지고 역시 3,4편도 그러합니다.

왜 편집자들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가던 때, 곧 그의 후반기에 지은 시를

가장 앞쪽에 배치했을따요?

그 시의 내용들이 '복있는 자'와 그에 대조되는 '악인들'에 대한 의미를 극명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2편과 3,4편은 서로 연결된 병렬구조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것에서도 이런 의도를 가지고 되어 있기에 주목하여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성경 번역 자체가 이 시1편과 2편의 두 구조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젖이나 먹는 어린 아이가 아니기에 이런 많은 장애, 틀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문자와 수건을 넘어서 그 '영적 본질'을 읽어내는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2편에 '의인'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운 자'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이 나오는 것인데,

그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방 나라들'이 '세상 군왕들'이라고 되어 있으니 단순히 '이 세상의 세력들',

'이방인들'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가지고 세상의 불의와 악한 구조를 대적하는 기도, 사역들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하구요.

그것은 원문이나 성경이 가르치는 의미를 모르는 것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성경 전체도 그렇지만 시편에서 주로 다루는 '악인', '원수', '이방나라'는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불의와 악의 구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딤후3:15)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버지가 우리를 '훈계와 의로 교육하기 위하여' 기록하신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역사적 현실을 담은 것이라 해도 항상 우리의 영적인 구조, 실제로 읽어야 

온전히 성경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도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 기초조차 가지지 않고 스스로 지식인, 의인, 안다고 착각하는 교만함 때문에

성경을 얼마나 왜곡되게 읽어왔는지 모릅니다.

시편이 사람 자신의 고백을 넘어서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삼하23:2)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각 시편 기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심으로 '진리의 영적 구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 '이방 나라들'로 번역된  히브리어로 '고임'은 '민족', '열방', '나라'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 나라'라고 번역하고 우리는 그저 믿음의 지경 밖 '이 세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 전체에서 꼭 '고임'은 '이방'만 가리키는 용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고임)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창17:6


슬프다 범죄한 나라(고임)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사1:4

 

'고임'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이고 '이스라엘 백성'으로도 

수없이 많이 쓰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그 나라(이스라엘)'가 바로 '고임'이라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이방 나라'로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번역되었을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이방인'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집중력을 잃으면 사람의 생각이나 구조에 갇히게 되는데 그것이 '이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주님은 당시 하나님께 그토록 열심이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에게

'개', '돼지', 심지어 '뱀들', '마귀의 자식들'로 비유하십니다.

'개'나 '돼지'는 율법이 규정하는 대표적인 '부정한 동물'이고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정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을 

왜 이방인처럼 말씀하셨을까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표면적인 이스라엘'(롬2:28,29)이 진정한 이스라엘이 아니고

그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면적(영적) 이스라엘'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민족들', '왕들'은 바로 이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큰 나라(가돌 고임)', 곧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백성들은 대부분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그 말씀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헌신했는데(롬10:2) 그런 이들을 '이방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개념입니다.

성경은 영적인 언어인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적 현실, 구조들을 무시하지 않되 성경이라는 진리가 가진 본질적 개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것'(마7:6)이고 이것을 무시하는 영적 구조들을 '개와 돼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그룹들을 '이방인'으로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충격적인 발언이겠습니까?

이들이 시2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이방 나라'라고 한 것입니다.

아직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있을 터인데 시편에서 우리는 그런 성경의

구조들을 많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존에 인식하는 것이 맞다면 '이방 나라' '세상군왕들', '민족들'은 무조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구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스라엘과 교회의 역사에서 그런 인식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본질을 헤친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여기서 '헛된 일'을 꾀하는 '민족들'(시2:1)은 히브리어로 '레옴'인데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부 예수님의 말씀에 나오는 개념들입니다.

그리고  '세상 군왕들'은 히브리어로 '아레츠 멜레크'입니다. 

이 말은 '땅의 왕들'이란 뜻인데 성경에서 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들이 말못 읽히면 성경 전체를 오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1장에서,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계1:5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헬라어로는 '게스 바실류스'인데 문자 그대로 하면 이것은 '세상의 왕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그들의 머리가 아니십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신약에서 '세상', '땅'을 의미하는 '게'는 히브리어로 '에레츠'와 동일하며 그것은 거의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알지 못하여 우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것 때문에 '종말'이나, 주님의 '재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해한 부분이 많습니다.

성경을 그 본질대로 정확히 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기름부음이며 '능력'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권능'은 '진리의 반석위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고 앞으로 깊이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계21:24


이것은 '새 예루살렘성'에 대한 것인데 '만국'이라는 헬라어 '에드노스'는 시편에서 말한

'고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이방', '열방'이라는 말인데 그것 대로라면 '열방'이 새예루살렘성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열방이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뒤에 '땅의 왕들'도 동일하게 '게스 바실류스'인데 시2편의 '세상 군왕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까요?

헬라어로는 '게스 바실류스'이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편의 대표적인 문법은 '병행법'입니다.

그 뒤에 27절을 보면 그 성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21:27


그렇다면 여기 새 예루살렘에 들어 오는 ''만국', '땅의 왕들'은 바로 계시록1장 5절에서

보았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그 나라, 왕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거룩한 나라들'입니다.

왜 제가 이렇게 한 구절, 하나의 개념으로 집중해서 다루는지 이해가 되시는지요?

성경의 개념, 본질적 구조가 잘못되면 전체를 이해하는데 크게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이 진리의 본질적 구조들, 원리들, 공식들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시2편으로 돌아가 기름부음 받은 자를 향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이 바로 '악인들의 행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분노'의 히브리어는 '라가쉬'입니다.

우리는 그저 분노라고만 생각하지만 이 말은 '떠들썩함', 자기 감정, 분에 못이겨 '격노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것이 시1편에 연결되는 '악인'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이 '라가쉬'의 '떠들썩함', '격노'가 바로 우리를 '이방인'이 되게 하는 용적 요소입니다.

시편은 진정한 왕, 의인들은 하나님 얼굴 앞에서 잠잠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시4:4


지금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무리들을 향하여 이 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짜 왕', 거짓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사는

그들이 바로 '이방 나라'이며 '세상 군왕'인 것입니다.

시2편 기자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음 자'인 '다윗'을 대적하는 그런 이스라엘의

패역한 무리들을 향하여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적 노래입니다.

다윗은 '악한 자'를 상징하는 그들에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하라'고 경고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분노'에 대비되는 것입니다.

'잠잠하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그냥 '침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속에서 '중심(레바브)'에 새겨진 말씀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 '라가쉬(분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로 오면 '사람의 계명, 장로들의 유전'(마15:3,9)가 됩니다.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그 전통적인 구조로서 기름부음 받은 왕인 예수님을

대적하고 분노했습니다.

오직 진정한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 앞에서 '잠잠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의의 제사'를 드리는 것(시4:4)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 뜻을 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잠잠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주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오히려 기름부음 받은 자를

분노하고 대적하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37:7,8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62:1

 

시편은 수없이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의 히브리어 '다맘'은 '벙어리가 되다'라는 기본 뜻을 가지는데 '자기 안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 가는 것이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오는 것, 곧 사람의 계명,

관점, 생각이 악하다고 하셨습니다(마15:18).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본질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다맘'은 자신의 것을 멈추는 것, 멸망시키는 것, 잘라 버리는 것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육신에 속한 구조를 죽이는 것이 '잠잠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헌신으로 추구해도 '분노'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아주 중요한 사건 중에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분노'와 '잠잠하다(다맘)'의 본질을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