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그의 길을 따르다(4)-베들레헴

  • 김우현
  • 조회 3033
  • 2014.02.01 11:55

4.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5:2

 

 

 

미가서 5장의 예언은 정확히 ‘베들레헴’을 지목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어서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그동안 알고 있는 것,

익숙한 진리라도 다시 구하고 그 안의 영을 알기를 열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가의 예언을 다시 찾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목자를 향하여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니라”(미5:2)고 하셨다.

갑자기 이것이 나의 영을 주목하게 했다.

진리의 성령님께 가르침을 구하고 겸비함으로 말씀을 대하면 내 영이 반응하고

주목하게 하는 것이 있다.

먼저 미가는 ‘베들레헴’만이 아니라 ‘에브라다’를 함께 말하는 것이 특이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 왕의 근본이 ‘상고와 영원’이라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근본’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를 찾으니 ‘모짜야’다.

그것은 ‘근원’, ‘파종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상고(上古)’는 놀랍게도 ‘케뎀’이었다.

이것은 나를 자극하였는데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 이기 떄문이다.

나는 이스라엘에 가서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 형제들과 교제를

하면서 매우 독특한 관점들을 배웠다.

그들은 유대인들이라 성경을 ‘히브리적인 관점’으로 읽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부르심과 나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롬3:2)이다.

그런데 그들은 히브리인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히브리인들에게, 히브리어로, 히브리의 문화와 배경, 관점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이 쓴 히브리인들의 관점을 알지 못하면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성경적인 단어나 용어를 알고 싶다면...

그것이 성경에서 가장 처음에 어떤 의미로 쓰여 졌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것을 ‘처음 언급의 법칙(the law of first mention)'이라 부른다.

성경의 중요한 원리는 ‘장자’, ‘첫열매’, ‘초태생’이고 가장 먼저 나오는 것 안에

본질적인 것이 계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근본절인 원리, 개념이 들어 있는 ‘뿌리(roots)'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은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적이 없기에 조금은 낯선 것이었으나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원리를 적용하면 '케뎀‘이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은 놀랍게도 ’에덴 동산’의

위치로 서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의 위치인 ’동방‘의 히브리어가 ’케뎀‘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사뭇 다름을

알게 한다.

‘케뎀(동방)’은 ‘동쪽의 해돋는 곳’이라는 방향적 의미와 시간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대’라는 뜻을 함께 가지는 단어다.

그리고 가장 ‘처음’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영원’은 ‘올람’, 곧 이 세상의 시간 밖의 ‘숨겨진 시작’이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가 오시는 때를 ‘올람하바’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로 가득 찬 회복된 나라, 곧 ‘영생의 시대’인 것이다.

나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나시는 분의 근본을 연구하며 매우 감동했다.

비록 세상에서는 작은 고을이지만 거기서 탄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으로부터

오시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살피면서 매우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고대의 시간’,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매우 독특한 예언을 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46:10

 

하나님께서는 ‘시초’, 즉 ‘처음’부터 ‘종말’에 이루실 일을 이미 계시하셨다. 

이것은 성경을 연구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마지막 때에 대하여 알기를 원한다면 창세기의 시작이나

율법 안에 처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아버지는 이미 ‘처음(레쉬트, 시작)’부터 ‘종말(아하리트, 완성)’의 비밀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의 종말은 ‘여호와의 날’이며 그것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성취되어진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은 멸망의 의미보다 회복과 완성, 구원을 위함이다.

그리스도가 오시는 역사와 계획, 뜻은 이미 창세기의 ‘처음’부터 세워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아주 오랜 고대의 시간인 ’옛적‘부터 하나님의 뜻이 세워졌다.

이미 뜻이 하늘에서, 처음부터 완성되어져 있는 것이다.

이 ‘옛적’이란 히브리어가 ‘케뎀’이다.

예수님의 여정을 연구하면서 나는 놀랍게도 성경의 본질과 원리들을 배우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알던 관점을 송두리째 흔들고 새로운 지경으로 들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연구하며 예수님의 베들레헴의 탄생도 창세기(케뎀)에서부터 이미

계시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시는 분의 근본이 ‘케뎀’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베들레헴’만이 아니라 ‘에브라다’를 포함하여 예언된 것을 주목하였다.

이 부분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후배 진상이가 뜻밖의 말을 하였다.

그는 히브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의 촬영을 돕고 있었다.

“감독님,...에브라다가 현재 이스라엘 지도상에 나와 있네요.”

그 말은 내게 놀라운 것이었다.

내가 ‘에브라다’에 대하여 깨닫게 해달라고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대의 지명일 뿐 아니라...현재에도 있는 것이란 말이지..

그것은 전혀 생각을 못했네.”

“네..정확히 족장길 근처에 에브라다가 있어요.

히브리어로 된 지도에서 지금 발견했습니다.“

나는 후배에게 빨리 그곳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차를 몰아 지도상에 나와 있는 에브라다를 찾아 갓다.

놀랍게도 바로 그 마을 앞에 ‘족장들의 길’이란 표지가 서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이 다니던 옛날 길이다.

여전히 비포장도로로 중안 산악지대를 가로지르는 그 길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길이 이어지는 곳에 에브라다가 남아 있고 조금 더 가면 베들레헴이었다.

나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왜 ‘베들레헴’만이 아니고 ‘에브라다’를 같이 말씀하셨는지

이 길과 지형들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냥 말씀의 문자나 자료만 보던 것과 다른 실제적 이해가 현장을 찾아가자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의 여정을 탐구하면서 배운 가장 큰 결실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땅의 지형적 구조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누구도 깊이 주목하지 않은 관점이다.

특히 나는 ‘나사렛’과 ‘갈릴리’를 연구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사실, 나사렛에 관한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인 발굴들도 매우 적은 편이다.

성경에서도 베들레헴만큼이나 나사렛에서의 예수님의 삶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이 예수님의 출신지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나사렛’의 비밀을 알게 해달라고 진리의 성령님께 간절히 구했다.

그리고 그 땅을 찾아가 살피자 점점 보이지 않던 것이 느껴지고 만져지고

깨달아졌다.

어떤 이들은 ‘진리의 성령’께 가르침을 구한다는 것이 낯설을 것이다.

마치 비이성적이고 무언가 신비주의적인 냄새가 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비성경적이고 이비성적인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길을 탐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망이 열렸다.

그래서 매일 그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에 깨닫게 하신 말씀이 있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그전에도 수없이 읽었던 이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졌다. 

바로 앞에서 주님은 아버지께 구하여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요14:16,17).

나는 그동안 성령 충만과 인도하심을 구했지만 ‘진리를 가르츠시는 분’으로서

인식하지 못했다.

‘가르친다’는 헬라어를 찾아보니 ‘디다스코’였다.

그것은 또 하나의 감동이었는데, 마치 장인이 도제교육(徒弟敎育)하듯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님에 대한 것은 창세기 시작부터 계시되어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창1:1,2).

히브리인들에게 ‘땅’은 사람의 ‘마음 밭’이고 ‘이스라엘’이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는 성경에서 ‘영적인 흑암의 상태’ 곧 ‘우상과 비진리’에 갇힌

'무지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 안에 갇히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이스라엘이든 우리든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영적인 상태였다. 

무언가 안다 생각하고 체험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치달아 왔지만

예수님의 여정을 탐구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만 가득 채웠던 것이다.

정말 베들레헴에서부터 나는 초보적인 성경의 지식이나 자료들 외에는

그 깊이와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께 가르쳐 달라고 구하기 시작했는데 ‘진리의 성령님’이

임하신 것이다.

말씀 그대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위에 ‘하나님의 영(루아흐, 성령)께서 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운행하다’이라는 히브리어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메라헤페트’라는 말이었는데 막연하고 추상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매우 치밀한 ‘계획과 전략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는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신약의  ‘디다스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님’은 매우 구체적인 하늘의 전략과 방향,

프로그램을 가지고 나를 가르치시고 이끌어 가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영적 실제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내 삶에 너무나 큰 방향전환과 축복을 경험하게 하는 지식이었다. 

나는 이 믿음을 가지고 성령님께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매일, 순간마다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이전에 닫혀 있던 것들이 풀리며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이고 알지 못했던

지경들로 걸어가게 된 것이다.

베들레헴, 나사렛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땅의 지경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성령님께 가르침을 구하고 나서 부터이다.

나사렛은 주변의 땅들과 깊은 연결 고리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 펼쳐진 이스르엘 평원, 갈멜산, 다볼산, 므깃도, 수넴 등등의

지형들과 그것에 있었던 말씀의 역사들이 한데 어우려져 나사렛이란

의미를 조합하고 완성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그것을 열어 주신 것이다.

베들레헴과 에브라다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은 족장들의 길로 이어지고 있고 거기에 얽힌 역사들과 연결고리를 가진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16:13,14

 

나는 주님의 이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모든’이라는 히브리어는 ‘콜’이다.

그것은 ‘전부(all)'라는 의미인데 히브리적으로는 ’하나님의 온전함‘을 의미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영광’과 ‘그분의 본질적인 길’이다.

하나님의 모든 것, 온전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잃어버러서는 안된다.

이것을 통해서 그동안 단세포적으로 표피적인 성경이해에 머물던 것을

탈피하여 통전적이고 입체적인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에 대한 창세기의 '처음‘ 연결고리를 성경에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