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그의 길을 따르다(6)-베들레헴

  • 김우현
  • 조회 5681
  • 2014.02.02 13:29

6.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창35:20,21

야곱은 ‘베들레헴 에브랏’ 길에 라헬을 묻고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에

‘장막’을 쳤다고 한다.

‘에델’이라는 히브리어는 ‘양떼’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에델 망대’는 베들레헴 부근에 고대부터 ‘양을 치던 곳’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특이한 것은 야곱이 거기에 장막을 치고 나서부터 그 이름이 ‘이스라엘’(창35:22)로

바뀌었다는 것이다(창35:22).

이것은 ‘에델 망대’가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언약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몇 년 전 이 말씀을 읽고 에델 망대의 흔적을 찾아 나섰던 적이 있다.  

그 어떤 성지에 대한 자료에도 나오지 않고 지도상에도 없는 그 장소를 기도하며

찾기 시작했다.

나는 에브라다로 가는 길에 창 밖에 독특한 풍경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들이나 밭에 수없이 보이는 돌로 쌓은 탑들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망대는 돌로 쌓은 파수대(watch tower)이다.

나는 인터넷의 자료에서 찾은 그것과 유사한 탑의 흔적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것에 

매우 놀랐다. 

혹시 이것이 ‘에델 망대’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급히 차를 돌려 마을로 들어갔다. 

이름 조차 알 수 없는 작은 아랍 마을의 주변 들판과 밭에는 그런 돌로 된 답들이

산재해 있었다.

“저것은 아주 고대로부터 양들을 지키던 곳입니다. 

짐승들로 부터 양을 보호하고 어린 양들을 돌보던 곳이지요.” 

마을에서 만난 한 아랍인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에브라다로 가는 길가에는 이런 ‘망대’가 무수히 많았다.

고대로부터 이 지역은 양을 치던 곳이라 ‘양 떼의 망대’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이름이 ‘에델 망대’였던 것이다.

야곱이 이곳에 ‘장막’을 친 것과 예수님의 탄생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그 때 하게 되었다.

나는 일단 ‘에델 망대’에 대한 자료들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정통 유대인 랍비들과 메시아닉 신학자들 가운데 ‘에델 망대’를

연구한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19세기 유럽에서 초기 성경의 역사를 깊이 연구한

‘에델샤임(Alfred Edersheim)’의 책은 큰 도움을 주었다.

대단한 석학으로 알려진 그는 그 당시에 보기 드문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히브리적인 성경의 이해와 고대 유대교의 전통과 자료들에 능통했던 것이다.

에델샤임은 그의 책 <메시아 예수의 삶과 시간 속으로, in The Life And Times

Of Jesus The Messiah>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믹달 에델(에델 망대)’은 단순히 베들레헴에 있던 보통의 양떼를 키우던 망대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는 것이었다. 미쉬나(유대교 유전)에 나오는 구절은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데,  

그 목초지에 있는 양떼들은 성전제사를 위한 목적이 있다'(쉬케림 7:4)는 것이다. 더욱이 에델 망대는 

 ‘탈굼(구약의 아람어 번역)’에도 언급되어 있다. 랍비 문크가 언급한 <탈굼 요나단> 은 창세기 35:23과  

미가 4:8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는데, “야곱은 그의 장막을 에델 망대에 쳤다. 그곳은 왕, 메시아가  

마지막 날에 자신을 드러낼 곳이다” 

우리는 이러한 랍비들의 글에서 어떠한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첫째로, 에델 망대는 성전에 드려지는 양떼를 지키는 파수대였는데, 그것들은 단순한 양떼가 아니었다.  

그것을 치던 목자들은 단순한 양치기들이 아닌, 특별한 훈련을 받은 선별된 남자들로 성전제사를 위한  

양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다치거나 흠이 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나는 이것을 읽으며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에 대하여 매우 새로운 경지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에브라다의 부근에는 아직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다니던 ‘고대의 족장길’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옛날의 광야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주변에도 수많은 망대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대 전통에 의하면 베들레헴 에브라다 근처는 예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를 위한 양들을 키웠는데, 특별히 ’에델 망대’에서는 속죄제에 쓰이는

‘흠이 없고 순전한 어린 양’을 길렀다고 한다.

이것은 이전에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곳의 목자들은 일반적인 이들이 아닌, 특별히 하나님의 정하신 절기의

때나 제사의 본질, 율법에 대한 지식을 배운 선별된 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는 메시아가 이 ‘에델 망대’에서 ‘자신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메시아는 자신을 상징하는 ‘순전한 어린 양’을 키우는 그 에델 망대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처음 나타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누가 복음에는 메시아의 탄생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이들이

베들레헴 에브라다 지경의 목자들이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8-11

 

나는 이런 복음서의 기록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제일 먼저 알린 그 목자들이 바로 에델 망대를

지키던 이들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당시 ‘베들레헴 에브라다’의 양을 기르던 지역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지한 목자들이 아니라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던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약의 역사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 년전, 수천 년 전에 약속하신 것을 정확히 이루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전능하신 분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선포된 이 언약의

구조와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야곱이 이 ‘에델 망대에 장막을 쳤다’(창35:21)는 것과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것을 주목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구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야곱이 이곳에 오기 전에 먼저 장막을 쳤던 곳이 있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33:17

 

이방 땅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가나안에서 에서와 극적인 상봉을 마친 야곱은  

‘숙곳’이라는 곳에 자신과 양떼들을 위하여 장막을 친다.

그래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장막’을 ‘숙곳(Succoth, 수콧)’이라 부르는 개념이 생겼다.

여기서도 ‘처음 언급의 법칙(the law of first mention)'이 적용된다.

이스라엘은 ‘장막(초막)절’을 ‘수콧’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들의 광야에서 장막에 거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후에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야곱의 자손들은 어린 양의 피로 해방되어

‘숙곳’이라는 곳에 처음 장막을 친다(출12:37).

거기에 모인 무리들은 ‘야곱의 자손들’만이 아니었다.

‘허다한 이방의 족속들’과 ‘양과 소와 많은 가축들‘(출12:37-39)이 포함되어 있었다.

성경은 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연합‘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소망(구원)‘이신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에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전해 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지명’과 ‘인명’등에 연결 된 의미들을 매우 중여시 여긴다.

‘숙곳’은 ‘이스라엘와 열방’이 한 집에 거하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넘어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그림이다.

이 사건들과 지명들은 예수님의 베들레헴의 탄생과 그 시기에 대한 비밀을 알려 준다.

 

 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2:6,7

 

 

베들레헴에 호적을 하러 갔던 마리아는 라헬처럼 그 지경에서 해산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고난의 아들’과 ‘부활의 아들’의 운명을 동시에

가지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머무실 ‘여관’이 없어서 짐승들의 외양간에서 해산을 하고

구유에 뉘어졌다.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이 번역은 현대적인 문화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 문화, 언어의

배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여관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 장소를 ‘마구간’으로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말과 양들, 낙타가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리고 ‘구유’는 말의 먹이통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말을 부정하게 여겨 아주 특별한 로마의 군사적 목적 외에는

흔히 키우지 않았다.

이제 이런 정도의 역사적인 정보들은 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구유’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파트네(phatne)’인데

이것에 상응하는 히브리어는 바로 ‘수콧’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야곱의 장막이 지어진 ‘숙곳’과 동일한 말이다.

그러므로 ‘구유’로 번역된 그것은 사실 ‘장막’이다.

‘짐승을 키우는 우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초막절 기간‘에 임시 거처를 쓰는 그 ’장막(sukkot)‘을 가리킨다.

우리는 고대 히브리적인 문화와 풍습의 배경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는

성경 해석을 해왔다.

최근에서야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졌지만 오랫동안 서구의 헬레니즘적인

문화와 언어의 프리즘으로 보았기에 정확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탄생한 시기를 12월25일로 지켜왔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의 성탄절은 AD 336년 로마 카톨릭에서 재정한 것이다.

당시 그 날은 이교도들의 농신제(農神祭)였다.

게다가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은 태양신의 탄생일로 휴일 이었다.

로마 카톨릭은 이 이교도의 제일을 금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일로

대체한 것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들이 있다.

12월 25일 경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수전절(하누카)’ 즈음 이다.

성전을 파괴하고 더럽힌 헬라의 지배세력을 물리치고 회복한 ‘빛의 절기’였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깨어 있는 사역자나 성도들은 그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 날짜에 예수님께서 탄생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학자들은 ‘초막절’기간에 탄생하셨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구유(파트네, 장막)는 ’짐승의 우리‘일뿐 아니라 ’초막절‘의

‘장막’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단지 현대적인 개념으로 구유라고 부른 것 뿐이다.

지금도 초막절에 이스라엘에 가면 집 옥상이나 공터에 무수한 ‘장막(succoth)을

볼 수가 있다.

만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가 초막절 기간이라면 베들레헴에도 많은

초막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누가는 정확히 ‘장막’에 태어나셨다고 기록했다.

누가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복음을 유대의 절기에 대한 개념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서구의 안목으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눅1:5,6

 

 

누가는 세례 요한의 부모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탄생의 시기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계열의 제사장으로 그 해에 성전에서 봉사했다.

그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다.

천사는 놀랍게도 사가랴의 아들 요한이 ‘엘리야의 영으로 오는자’(눅1:17)‘라고

가르쳤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바로 그 앞에 ‘엘리야’가

먼저 오는 것이다.

이것은 말라기 선지자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라는 예언에 근거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규례를 지킬 때에 정확한 법과 순서를 따르므로 사가랴가 제사장으로

봉사한 기간을 연구하면 이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다.

역대상 24장을 보면 다윗이 솔로몬을 위하여 아론의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

직무를 담당하는 순서를 정한 것이 나온다.

그들은 ‘24반열’로 나누어져 1년에 두 번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되어있다.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의 계열’은 8번째 반열에 속한다(대상24:10).

이 제사장들의 직무의 시작은 유대력으로 한 해의 시작인 봄, 곧

‘니산월 안식일(4월경)’에 시작했다.

각 계열이 1주간 봉사하므로 8번째인 아비야의 계열은 ‘시반월’인 6월 경에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그 시기에 잉태된 것이다.

그로부터 10개월 후는 그 다음해 4월 곧 니산월 즈음이 된다.

이 때가 ‘유월절 ’기간인 것이다. 세례 요한이 유월절 즈음에 탄생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유월절에 ‘세데르’라고 하는 만찬을 먹으며 4개의

포도주 잔을 준비하여 마셨다.

이것은 ‘출애굽’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4가지 과정으로 해석되는 구원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잔을 따로 두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것이 ‘엘리야’다.

유대인들에게 엘리야는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는 전령사였다.

그가 오면 메시아의 때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마17:10)라고 물은 것이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치밀하게 연구하는 이들이다.

만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반드시 그 앞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리라 한 엘리야가 그(요한)니라”(마17:11,12)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유대인들이 ‘유월절’마다 잔을 준비하고 긴절히 기다리던 ‘엘리야’였다.

그는 반드시 규례를 따라서 유월절 기간에 태어나야 했다.

예수님은 요한보다 6개월 후에 태어났음을 누가는 알려주고 있다(눅1:26).

세례 요한이 태어난 4월(유월절 기간)에서 6개월이 지나면 정확히 10월 즈음,

‘초막절’기간인 것이다.

더욱 확실한 증거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10)고 했다.

‘큰 기쁨의 소식’은 유대인들에게 초막절과 깊이 연관이 되는 것이다.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계시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초막절에 태어나셨고 유월절에 어린 양으로서 정확히 죽으셨으며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다. 이제 나팔절에 재림의 소식을 나타내실 것이다.

이 절기들 중에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을 알리는 때는 ‘초막절’이다.

티타임 (24.♡.192.183)
그분은 태어난곳도 결국 어린양 속죄양으로 오심이었군요
어쩌면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그렇게 치밀하게 처음부터 계획하시고 필연적으로 이루어 지도록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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