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시작을 이스라엘에 촬영을 다녀왔다.
다녀온 후로 며칠간이나 기분이 아주 묘했다.
이번 촬영은 ‘정통 유대인들’을 살깊이 다가가 취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강박을 쫘악 빼고 아주 편안함으로 그들의 풍경을
담아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정통 유대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때이다.
진정 나는 오랜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서 그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바울이 말하는 ‘이방인의 충만함’(롬11:25)이 거의 차고 이제는 ‘유대인의 때’가
다시 되었는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동안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때(kairos)'를 많이 읽어냈다고 새각했었다.
그ㅓ나 그것은 착각이고 가면 갈수록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것만 깊이 절감하고 있다.
나는 아주 작은 대야 안에서 헤엄치는 금붕어인지도 모른다는...상상을 가끔한다.
솔직히 나는 어느 때, 시기에 대하여는 아버지의 주권(행1:6)임을 믿는다.
그러나 내가 인식하는 것은 ‘예수님의 몸’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저들이 주 앞에 돌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강한 마음 보다는 정통 유대인에 대하여 오랫동안
우리가 가져온 마음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적이고 편안하게 접근하고 그들의 가진 속내를 진솔하게
다루어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결과는...촬영은 아주 좋았다.,
나는 기도하며 주시는 감(感)으로 세운 구상과 현장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무엇을 중요시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은 구상한대로 거의 되었다.
역시 잠잠하나 성령님의 인도와 연출은 아름다웠다.
많은 기도 동지들과 뜨겁게 보내던 지난 일정들에 비하여 매우 편안하고 부담 없는
휴식 같은 여행이었다.
그런데 다녀와서 며칠을 나는 오랜 여행으로 매우 지친듯 이스라엘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이스라엘 여행의 후기는 '말씀'으로 채워졌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기를 간절히 구하고 돌아오면 놀랍게도
아버지는 ‘새로운 말씀들’을 열어 주셨다.
나는 그것이 마치 ‘아들아..잘했다’ 하고 주시는 선물 같았다.
지금 나는 가지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세속적이거나 사역적인 야망 같은 것은 거의 없다.
그런 갈망이 너무 없어서 문제일 정도이다.
심지어 최근에 시편에 감추인 예언적 구조를 탐구한 <숨겨진 일>이란 책을 내고도
한다리 넘도록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다.
무슨 대단한 자신감에서가 아니라...나눌 만한 것이면 성령님께서 배급하시리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담은 것은 필요한 이들에게 읽혀진다.
그러니 너무 인간적으로 애쓰고 안달하며 허덕이지 말자.
다만 그래도 가장 소유하고 싶은 무엇은 역시 ‘말씀’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깊은 지경을 만지고 싶다.
정말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아버지의 선물일까?
나는 이스라엘로 인도되어 가면서 놀랍게 말씀의 지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항상 지치고 피곤하여도 꼭 열어 주시는 그 선물로 인하여 나는 다시 이스라엘로 가려는
부단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깊은 우물처럼 내 안에
가득 고여 있었다.
부러 일주일 정도를 무심하게 지내고 ..은밀히 골목길들을 다니며 침잠한 속내를
아버지께 올려 드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 안에서 솟아나는 기도의 근원들을 주목한다.
내 육신적인 정보와 지식에 기인하는 것보다 잠잠히 기다려 내영이 구하는 것을
들을 필요가 있다.
"아버지...지금까지 무엇을 알고 누렸고 세웠든지....
이제 그것을 다시 부수고 새롭게...아버지의 형상으로부터 나온 지식으로
옷입기를 원합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통하여...아버지의 뜻을 열어 주세요.“
진정 나는 지금까지의 기초와 구조를 다 부수고 새롭게 건축하고 싶었다.
그것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기초를 다지는 것이
반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주님의 음성을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내 안의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다.
오래 묵으면 누룩이 된다.
이스라엘로 가면서 나는 다시 성경을 깊이 읽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가 누룩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출애굽 이후에 ㅇ주 강하게 주신 명령이 '누룩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출12:19
나는 이 명령을 읽으며 처음에 의아했었다.
'누룩'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강하게 그것을 제거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제는 그 의미를 알것 같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은 오래 묶은 '전통과 유전'을 생명처럼 여긴 집단이다.
물론 그들에게 중요하고 귀한 것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아버지의 멍령은 그럴지라도 누룩, 오래묵은 것들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하신
것이 바로 이것과 연결되는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더 나의 옛구조들을 부수어 주시기를 ...날마다 구하고 구했던 것이다.
이것이 살길이기 때문이다.
아예 이전과 다른 구조를 주신다 하여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뿐이다.
계속 이 간구를 흩뿌리자 며칠 후에 무언가 부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세심히 그것을 주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