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돌아와 서울로 향하는 차안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상태가 그리 좋은건 아니래..."
근 한달 가까이 적지 않은 횟수로 엄마에 대한 꿈을 꿨더랬다.
꿈속의 엄마는 무언가 결핍이 있어보여 매번 안타깝고 애처로운 심정으로 잠에서 깨곤 했는데...
그것이 꿈만이 아닌 내가 직면해야 하는 지독한 현실이라는 사실에 살짝 마음이 휘청거렸다.
난생 처음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면서 그 안의 정통 유대인의 풍경을
눈과 마음으로 충분히 담아내고 온 '영적 충만으로 가득한 것 같은 순간' 받은 소식은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그것도 내 근원이라 여기는 엄마의 휘청거림은 가장 혹독한 일상이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고 늘 무언가 결핍이 있다.
이 안에서 예배를 발음한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 도피나 하려는 - 예배가 젊은이들에게 꿈의 음악의 장르가 되어버린 우스꽝스러운 -
'젊은 예배자 지망생' 나부랭이 같아 보인다.
그래도 예배를 드리려고 올라갔던
노아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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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버리고
상품이 되어버리고
각자의 '비전- 음험한 야망'으로 변질된 현실 안에서
예배드린다
예배한다 라는 것이 어떤건지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