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강남역에서 가족이 영화를 봤다.
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변호인>을 보고나서 거리 포장 마차에서
떡복이, 오뎅, 튀김을 먹고 버거킹에서 커피와 아이스 크림..
모스버거에서 다시 햄버거, 감자튀김을 먹었다.
배도 부르고 오랫만에 바람을 쐬는 기분이었다.
천만 관객이 들었다고 화제이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엄청난
스케일이거나 대단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 자꾸만 무언가를 키우고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었다.
80년대 초 군사 독재 정권에 억울하게 희생 당한 대학생들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활약을 그렸지만...송강호 연기는 역시 훌륭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나는 자꾸만 '정통 유대인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전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촬영하면서...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내 안에서 복잡하게 오고 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주 앞에 돌아 오는 것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어쩌면 내가 우려한 갈라디아 교회의 영적 문제들이 크게 일어날 수도 있다.
올해 부터 몇년 간은 매우 중요하고 강한 영적인 변화들이 급류처럼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사59:19-21...
그러나 그 후엔 어떻게 되는가?
과연 지금 서구화된 틀거리의 우리 교회가 그들을 담아낼 그릇이 될까?
이번에 더욱 느꼈지만 정통 유대인들을 거의 가난하다.
그들이 돌아 와도 결국 '맘몬'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일부 교회는 그들에게 물질로 섬기려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그것은 곧 한계에 부딧친다.
서구화된 교회의 틀은 정통 유대인들에게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을 담을 수 있는 틀이 지금의 메시아닉 교회이다.
그것은 온전한가?
나는 최근 1년간 수백 군데의 메시아닉 싸이트를 방문하여 그들을 살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역시 고민이 생겼다.
그것을 짧게 쓰기란 어렵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 와서도 마음이 약간 혼란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계속 그들의 풍경을 생각했다.
메아 쉐아림과 통곡의 벽...쥬이쉬 쿼터에서 만난 수많은 유대인들..
그동안 그들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는 예수님 당시의 그들과 너무 흡사하다.
그 억울함을 풀어 주기 보다...일단 그들을 변호하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일어났다.
여전히 예수님을 거부하고 율법의 형식에 얽매이고 자기 의에 갇혔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교회가 저지른 부끄러운 죄악처럼 말이다.
아니다.
그래서 더욱 불쌍히 여겨야 한다.
"아버지여...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간구처럼 용서하고 긍휼히 여겨야 한다.
바울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이제 그 긍휼로서 다시 그들(유대인)들을 회복하시기
원한다(롬11:30-31)라고 나누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긍휼'이다.
그냥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변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꾸물 꾸물 기어 올랐다.
영화 한편 보고 지나친 감상에 빠진게 아닌가...할지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아무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긍휼히.,..그들이 주께로 돌아 오는일에 ...잠잠히...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