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 6에서 이어짐)더욱 확실한 증거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10)고 했다.
‘큰 기쁨의 소식’은 유대인들에게 초막절과 깊이 연관이 되는 것이다.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계시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초막절에 태어나셨고 유월절에 어린 양으로서 정확히 죽으셨으며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다. 이제 나팔절에 재림의 소식을 나타내실 것이다.
이 절기들 중에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을 알리는 때는 ‘초막절’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절기들을 진정으로 지키라고 명하셨지만 특별히 ‘초막절’에는
기뻐하며 즐기라고 하셨다.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레23:40
여기서 명하신 ‘종려나무’, 무성한 나무‘, 시내 버들’은 모두 ‘메시아’의 회복과
깊이 연관이 되는 상징들이다.
그 나무들로 ‘초막’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즐거워하다’의 히브리어 ‘사마흐’는 크게 기뻐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매우 기뻐하고 즐긴다.
언젠가 초막절 기간에 이스라엘을 방문했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통곡의 벽은 발 디딜 틈 없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유대인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골목 마다 집마다, 초막을 지어 놓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엄청난 노래 소리가 들려 가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통 유대인 청년들이 토라 스크롤(율법 두루마리)를 껴안고 시편을 외치며
기뻐 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메시아가 오시기를...큰 구원의 날을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는데 바로 그 날이 ‘심카토라(율법을 기뻐하는 날)’
이었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호쉬아나(호산나)”를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펴고
“호산나”를 외쳤던 것이다.
초막절의 끝 날은 ‘호쉬나 라바’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갈망하는 메시아가 오시는 날 ‘큰 구원의 날’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날에 성전에 가셔서 외치셨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7:37,38
이 ‘큰 날’이 바로 ‘큰 구원의 날’이고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가 오시는 가장 ‘큰 기쁨의 날’이다.
천사가 목동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알렸는데 그것이 초막절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초막절에 ‘초막(장막)’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라고 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라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의 헬라어는 ‘스케노오’이다. 이 말은 ‘장막을 치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장막을 치시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초막절에 태어나시는 것이다. 이것이 ‘큰 기쁨의 소식’, 곧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든지 ‘이방인’이라도 모두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 와야 한다고 하셨다(슥14:16-19).
그 날에는 모든 족속들만이 아니라 말의 방울까지 거룩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날이 메시아를 통해 온 열방이 거룩해 지는 때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의 본질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런 날짜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성탄절을 지키느냐의 안 지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아는 것에
대한 진실함이 문제다.
이런 것 하나에 대한 정확성의 결여가 아버지의 말씀전체에 대한 왜곡과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5:19
하나님의 말씀의 작은 부분이라도 소홀히 하는 자는 ‘천국(하나님 나라)’에서
매우 작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말씀에 대한 철저함과 정확성을 추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열심을 가졌으나 실패한 지점이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10:2)고 간파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경험, 지식, 전통이 기록된 말씀의 본질 보다 더 중요했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깊은 고민과 자각의 깨어짐이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