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1)

  • 김동훈
  • 조회 5201
  • 2014.01.29 15:54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익숙한 말씀이다.


특히 이곳에 나오는 ‘두세 사람’의 의미는
 

단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만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그렇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에 깊은 본질과 엑기스들을


가져오셔서 압축해 놓았기 때문에 압축을 풀어 파일을 열지 않으면 


그 안에 감춰진 깊은 의미들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엄청나게 구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세 사람’의 본질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들은 사실 엄청난 자들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매고


땅에서 풀면 풀리는 자들이고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지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두세 사람' 이란 과연 어떠한 자들일까?

 



먼저 위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8장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 하는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고 


그 중에서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에 대한 말씀과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합심하여 구하는 ‘두 사람’은
 재판관 앞에 선 피고와 원고를 말한다.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문제로 인해 다툼이 있었다.


그 앞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합심한 두 사람은


서로 사랑과 용서로 화해를 이룬 이 두 사람을 의미한다.


그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중재자로 함께 계신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5-17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고


신명기 17장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복음서엔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세히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여


그 본질을 가르쳐 주시는 것을 많이 살펴 볼 수 있다.


왜냐면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마 5:17)’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 17장은


우상숭배를 하여 범죄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규례들이고


마태복음 18장 역시 형제가 죄를 범하였을 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8장은 신명기 17장에 대한 예수님의 주석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들이 조금 부딛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17:4-7
 

 


이 말씀을 그냥 문자적, 표면적으로 읽으면


죄인을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 당연한 하나님의 뜻이고 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의 사건만 보아도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 8:3-5
 


 

물론 이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말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으시고 왜 다르게(?) 행동하신 것일까? 


율법이 불완전하고 틀린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잘못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가 아니신가?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이고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라는 전제로 이 말씀을 보기 때문에


당연히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권고하라는 말씀이구나 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당시 율법의 표면만 본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는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율법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해서 많이 놀라셨죠?^^;) 



 

사실 이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야기 하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그들이 온전히 읽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말씀을 지킨다고 우리의 열심을 내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시험에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지 모른다.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이 그들의 어떤 부분을 지적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그들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하면서


율법의 더 중한 바, 아버지의 마음에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의, 긍휼, 진정한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