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감람나무

작은새 노트(2)

  • 안정혜
  • 조회 1804
  • 2014.04.11 20:07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왕상18:30-32)

 

 

목요광야학교에서 엘리야 선지자 공부를 하며, 

엘리야의 제단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이 지금 너무나 영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그 제단을 회복하는 과정을 공부하면

엘리야의 그 기도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하옵소서!"

라는 그 기도의 응답을 받는 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

 

요즘 내 간절한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이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일이 

일어나길..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제단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제단이니, 역시 돌을 먼저 공부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광야학교에서 배운대로 먼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제단의 돌이 아닌, 제단을 두른 도랑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냥 돌만 쌓아도 충분히 제단의 모습이었을텐데, 왜 도랑을 만들었을까?

그것도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크기의 도랑이라고 수치까지 적어놓은 것을 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배웠던 것을 떠올리면, 

말씀에 수치와 측량은 영적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도랑이 단지 불이 붙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 더 극적으로 불이 내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어떤 쑈(?) 같은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니 말이다.

 

이 도랑은 히브리어로 테아라. 수도, 도랑이라는 뜻 외에 

붕대, 상처에 붙이는 고약, 치료함, 고치다는 치유의 의미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테아라 히브리어의 어근은 알리야 였다. 알리야는 성전으로 올라가다는 뜻이다.

성전과 연관된 치유하는 물..바로 생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려던 차에

이 도랑을 "두르다"라는 말이 특이하게도 히브리어 "바이트"라는 말을 보는 순간,

정말 이 도랑이 정확하게 성전을 둘러 흐르는 생수의 강임을 깨달았다.

 

제단은 하나님의 성전이고, 그 성전을 두르는 도랑에 흐르는 물이 생수인 것이다.

이 도랑에 흐르게 될 물은 각을 뜬 송아지 위에 부은 물(네 통의 물을 세 번 부은 것)이다. 

그 제물을 적시고 제단을 따라 흐르는 물이 이 도랑에 모이게 되는 것이다.

 

물을 붓기 전에 이 도랑을 파서 제단을 둘러야 한다. 

이 도랑의 수치는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만한" 크기이다.

곡식 종자는 히브리어로 제라드이다. 성경에서 이 제라드는 언약의 자손들을 뜻한다. 

엘리야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사명을 가진 자이다.

 

'두 세아'는 뭘까? 성경에 세아가 쓰인 것을 찾아보니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아래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를 대접할 때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만들어 대접했다. 

또 하나는 다윗이 나발을 치려고 할 때에, 아비가일이 급하게 싼 여러 음식들 중 볶은 곡식 "다섯 스아"가 있었다. 

모두 예수님과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대접하여 드리는 예물을 말하는 것 이었다.

아브라함도 아비가일도 모두 지혜롭고 정결한 예수님의 신부의 표본이지 않은가. 

 

그들이 대접하여 드리는 그 모습들 속에서 다시한번 "섬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되었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

그 하늘의 감각을 배우고 싶었다.

 

더 깊이 두 세아에 대해 알고 싶어서, 게마트리아를 찾아보았다.

두 세아는 게마트리아로 66이다. 66인 단어가 굉장히 많아서, 여러단어들 중 하나님과 연관되어 쓰여진 것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시고 기뻐하셨다는 창 1장의 말씀 중, 그 "보시다"가 66이었고,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었다는 말씀 중에 "마치다" "완성하다" " 준비되다" "성취되다"는 뜻의

히브리어 칼라.가 66이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시다에서 올라오시다가 66,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칭하였다에서 칭하다가 66이었는데, 다윗이 예수님을 주라고 칭한 그 시편의 말씀은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는 시110편 1절이었다.

또 아들을 잃은 나인성의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울지말라고 하신 그 말씀이 66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찾았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18:14)

 

여기서 여호와가 66이란 숫자값을 가지고 있다.

이 여호와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시는 아버지시다. 그리고 아들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제까지 찾은 게마트리아가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완성하시고자 하는 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 

자녀를 잃어버린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그 자녀를 살려주시는 예수님. 그 아이를 삼키려는 용, 원수를 심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예표하는 언약의 씨,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예수님은 씨(제라드)를 보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0)

 

 

"곡식 종자 두 세아"는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그 예물, 

바로 예수님의 피값을 주고 산 교회이며 남은 자, 이 땅의 종자들을 뜻하는 것이다.

 

그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제단 주위로 파는 일은,

그 씨를, 자손을 보기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처럼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제단이 성전이라면, 성전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그 땅을 파는 모습는 꼭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고 함께 그 밭을 가는 그림(유대에서는 밭을 원을 그리며 판다)과도 일맥상통한다. 

 

나의 자아를 꺾고.. 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에게 배우고 그 가르침으로만

가득 차길 원하며 십자가의 길을 살려고 할 때에, 제단 위에서 그분의 말씀, 생수가 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랑에 온전히 그 말씀의 생수가 가득 찰 때에

 

남은 자녀들, 이 땅에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보기 원하시는 그 씨들이 회복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엘리야의 그 기도가 불로써 응답되는 것이었다.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만한 도랑. 

이것 하나에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씨, 자손을 보기 너무나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가슴 언저리에서 아픔과 떨림으로 느껴진다.

정말 이 시대의 산파를, 엘리야의 영을 가진 이들을 너무나 기다리고 계시는 구나.

 

나는 이왕이면 내가 그 자손이길 바랐지, 산파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내 교만이고 탕자의 비유의 큰아들과 같은 옹졸한 모습이었다.

 

이 시대에 보기 원하시는 자손, 가까이에는 우리 가정과 교회의 죽어가는 영혼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저 유대인들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돌. 진정한 참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

그들이 진정 일어나야 한다. 그들이 일어나야, 우리도 살 수 있다. 

 

교회가 진정으로 회복되길, 이 아픔과 절망에서 스러져 가는 영혼들을,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죽지 않기를. (이 아이들이 단순히 나이가 어린 자가 아니라,

정말 이 세대에 필요한 주님의 용사들임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김우현 (175.♡.26.75)
귀하다.
만일 이렇게 계속 파고 들면
깊은 경지를 보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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